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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63 일째

김대중 대 김대중(옮긴글)

[손석춘의여론읽기] 김대중 대 김대중 “국민 여론 앞에 성실하지 못하다.” 김대중 주필의 일갈이다. 누구일까. 여론을 왜곡해온 대표적 언론인으로 꼽혀온 김 주필이 `여론'과 `성실'의 이름으로 꾸중한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이다. 옹근 20년 전인 1980년 오월 정치인 김대중이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던 그 시절, 언론인 김대중은 오월의 민주시민들을 `총을 든 난동자'로 몰았다. 바로 그 김 주필이 김 대통령에게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란다. 모든 실상을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라는 훈계가 이어진다. 2000년 겨울을 맞는 대한민국 풍경화다. 기막힌 역설이다. 그게 인생이라며 사뭇 관조할 때는 아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쓸쓸한 풍경이 예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단 한 순간도 군사정권과 싸우지 않은 이들이 민주주의 수호를 무람없이 부르댄다. 국가보안법을 옹호해야 자유민주주의자라는 해괴한 논리를 거대 신문사들이 한점 부끄럼 없이 활자화하고 있다. 언론과 인권을 탄압한 정권에 아부를 늘어놓던 이들까지 언론자유와 인권을 외치며 뜸베질이다. 과연 우리 사회의 풍속이 이래도 되는 걸까. 미리 밝혀두거니와 김 주필이 김 대통령을 비판할 수 없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언론인이 지녀야 할 덕목이다. 더구나 그는 조선일보사가 내세우는 `할말은 하는 신문'의 주필이지 않은가. 그러나 거기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비판의 잣대는 투명하고 정직해야 한다. 무엇보다 언론의 미덕은 진실에 있다. 다른 언론인들이 쿠데타에 맞서 싸울 때 정반대의 글을 썼다면 `국민 앞에 석고대죄'할 일이다. 모든 실상을 털어놓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것이 한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라면 지녀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 적어도 대한민국이 거대한 `정신병동'이 아니라면 그렇다. 참으로 스산한 오늘의 겨울풍경에 정작 책임을 묻고픈 과녁은 하지만 김 주필이 아니다. 김 대통령이다. 정치인 김대중과 언론인 김대중을 나란히 늘어놓아 분개할 독자들도 있을지 모른다. 군사정권 시절 곡필을 휘두른 한 언론인과 노벨평화상을 받은 정치인은 분명 격이 다르다. 문제는 과연 실제로 그러한가에 있다. 김 대통령이 그러하듯, 김 주필 또한 개인 김대중이 아니다. 그가 대변하고 있는 이 땅의 기득권세력은 녹록지 않다. 게다가 김 대통령은 김 주필에게 훈계를 받아도 하릴없을 숱한 실정을 저질렀다. `경제 대통령'을 내세우며 경제위기를 극복했다고 주장했지만 과연 그러한가. 전국노동자대회와 100만 농민총궐기대회가 증언하듯 지역을 떠나 온 민중들이 겨울 칼바람 앞에 내몰려 있다. 정치는 어떠한가. 군사독재의 하수인들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그를 `단죄'할 만큼 집권 민주당은 국회를 파행으로 몰아갔다. 이른바 공동정부의 몰골은 더욱 추하다. 김 대통령은 보안법을 연내 개정하겠다는데 이한동 국무총리는 “우리 정부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버젓이 국회에서 몽니를 부린다. 표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보안법 옹호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들고 나서는 기만적인 작태 앞에 오늘 정부·여당은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 더 이상 김 대통령이 몽따고 있을 때가 아니다.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자화자찬은 흰소리가 된 지 오래다. 하자는 재벌개혁·언론개혁에 동참은 않고 하지 말라는 국가 기간산업의 해외매각이나 박정희기념관 건립은 기어이 하겠단다. 여론을 읽지 않고 수구언론의 뒤를 좇는 과오도 여전하다. 그나마 `위기'임을 의식해서일까. 그는 최근 `마지막 결전'의 각오로 부패 추방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바로 다음날 조선일보 사설은 그의 마지막 결전 발언에 대해 현 정권이 `마지막 시험대'에 올랐다고 지분거렸다. 유감스럽게도 그 깜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래서다. 정녕 마지막 결전이라면 부패공화국의 온상인 부패언론에도 눈돌리기 바란다. 그 결전엔 자신의 살을 도려내는 결기가 서리서리 묻어나야 한다. `마지막 당부'다. 여론 앞에 성실하라. 손석춘/여론매체부장 - 한겨레신문 칼럼에서 옮긴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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