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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일째
부드러운 음모
뜬금없이 부드러운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과격한 선동은 1980년대 식 낡은 담론이란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충고가 곰비임비 신문에 이어진다. 자신들은 언제나 날 선 칼을 휘두르면서 `역사의 칼'을 갈자는 말에 섬뜩한 음모라고 가살 피운다. 분명히 말하자. 험한 세상을 부드럽게 포장하기, 그것이야말로 기실 섬뜩한 음모다. 한 점 은유나 과장 없이 증언한다. 이 땅에 반민주 세력은 엄존한다. 우리는 너무 과거를 쉬 잊는다. 극우 군사정권은 3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을 지배하면서 곳곳에 `우호세력'을 두텁게 길러냈다. 무릇 어떤 권력도 총칼로만 설 수 없다. 피묻은 총칼을 민족과 민주 심지어 정의와 복지로 미화해야 했다. 누구였을까. 언론이었다. 민주시민들을 폭도라 했다. 쿠데타 원흉을 민족중흥의 기수라 하고, 학살자를 새 시대의 기수라 하며 찬가를 불러댔다. `온유한 이'들을 위해 거듭 강조한다. 은유도 과장도 아니다. 우리들의 누이와 딸이 저들에게 유린당할 때, 우리들의 아우와 아들이 저들의 폭력에 학살당할 때, 언론은 외면했다. 아니 찬양했다. 언론과 군부는 30여 년 동안 독재정치의 두 축이었다. 군부는 민중의 힘으로 1987년 6월항쟁 이후 시나브로 물러났다. 언론은 어떤가? 오늘도 서슬 푸르다. 신문사주들과 그 대변자들은 퇴각한 군부의 반북·반공·반노동 이데올로기를 날마다 선전선동하고 있다. 신문권력이 오늘 반민주 세력의 핵심인 까닭이다. 바로 그 정치공간에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이 공히 `태생적 한계'를 갖고 들어섰다. 두 정권이 민주와 통일 정책을 펴는 한 언론과의 갈등은 필연이다. 김영삼 정권은 야합을 선택했다. 결과는 무엇인가. 초기 반짝이던 개혁정책의 실종이었다. 최근 김씨는 94년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를 받아보고 신문사주와 그 가족들의 비리에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국민들이 허탈하고 언론사 존립이 위험해 세무조사 결과를 덮었단다. 김씨의 놀라운 발언에 한 술 더 뜬 것은 신문권력이다. 세무조사 자료가 폐기·은폐된 것을 믿어서일까. 는 김씨를 비난하며 사뭇 결백하다는 듯 진상을 밝히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참으로 익살스럽다. 공연히 `길길이 뛸 일'이 아니다. 방우영·김병관·홍석현 세 회장에게 다시 권한다. 스스로 진실을 밝히라. 괘사스런 일은 더 있다. 존립이 어려울 만큼 불법을 저질렀다는 신문권력 그 누구도 김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지 않는다. 김씨가 세무조사 결과를 덮었다는 이유로 조선일보는 그를 `치사하다'며 `민주화 투쟁 경력'을 조롱했다. “민주화 투쟁을 했다는 정권도 결국은 그런 짓을 한 것을 보면 이 나라 이 국민이 불행하다 할 수밖에 없다.” 김대중 정권이 귀담아 둘 경고다. 두 김씨 모두 신문권력 앞에 무너진다면, 이 땅은 다시 반북·반공·반노동의 파시즘이 지배하는 동토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언론사 세무조사와 공정거래위 조사가 여야 사이에 불집을 일으키는 풍경은 역설적으로 언론이 얼마나 막강한 정치세력인가를 웅변해 준다. 신문권력은 언론개혁 여론을 정쟁 차원으로 왜곡·축소하기에 바쁘다. 민주주의를 압살한 군사정권과 밀월을 즐긴 그들이 언죽번죽 신문의 권력감시 기능을 강조한다. `비판언론'에 재갈을 물린다고 되술래잡는다. 희극이다. 여론 독과점으로 그 억지가 적잖은 이들에게 진실처럼 들린다는 점에서 희극이되 비극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예의 사회과학 교수들이 나서 희극에 무게를 더한다. 희대의 사기극을 벌이는 신문권력에 부닐며 `온유의 철학'을 설교한다. 굳이 부드러움을 마달 까닭은 없다. 기실 심성이 부드러운 이들이야말로 민주와 통일의 길에 기꺼이 헌신할 수 있다. 하지만 경계할 일이다. 부드러운 구슬림에 역사의 칼을 놓는다면 돌아올 것은 오직 하나다. 신문권력의 칼날이다. 언론개혁은 밑절미 약한 김대중 정권만의 숙제가 아니다. 참된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갈망하는 모든 이들의 과제다. 언론의 궁극적 주권자인 독자들이 방심할 때 김대중 정권도 타협할 가능성이 높다. 바로 그 순간 `완결'되지 않을까. 저들의 부드러운 음모는. 손석춘/여론매체부장- 한겨레 신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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