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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초롱 하나가 불을 밝힌다.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너와 나의 사랑을 모두 밝히고
해질녘엔 저무는 강가에 와 닿는다.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유수와 같이 흘러가는 별이 보인다.
우리도 별을 하나 얻어서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눈 밝히고 가다가다 밤이 와
우리가 마지막 어둠이 되면
바람도 풀도 땅에 눕고
사랑아, 그러면 저 초롱을 누가 끄리.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우리가 하나의 어둠이 되어
또는 물 위에 뜬 별이 되어
꽃초롱 앞세우고 가야 한다면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눈 밝히고 눈 밝히고 가야 한다면.
<< 박 정만 >>
오늘 우리의 삶은 내일의 역사가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역사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 간다.시인 박정만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시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던 사람. 시인 아니고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사람.박정만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그가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이상한 방식으로 한 평범한 사람을 시대와 관계를 맺게 한다.
1981년 국풍행사가 요란하던 5월 어느 날, 그는 일명 '빙고호텔'로 불리던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끌려간다.
그리고 7년 후, 43살의 젊은 나이에 시인 박정만은 세상을 떠난다.
박정만은 1981년 5월 이른바 한수산 필화사건에 연루돼 가혹한 고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한 시인이다. 그는 시인 김소월의 계보를 이어 한국서정시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순수한 시세계를 노래했던 인물이다. 그는 개성있는 시를 통해 민중의 한과 슬픔을 남도의 유장한 가락으로 담아낸 천부적인 서정시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80년대는 자유를 갈망하던 서정시인마저 죽음으로 몰아갔던 시대였다.
고문으로 인한 고통을 겪은 후 그는 알콜중독으로 망신창이가 된다. 그러나 죽음을 맞기 1년 전 단 20여일 동안 무려 300여편의 시를 쏟아내는 초인적인 능력을 보인다. 이때 그는 기존의 허무주의를 넘어 현실비판과 참여의 의지를 거침없는 시어로 보여준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의 생명이 마지막으로 용솟음치는 절명의 순간에 접신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러 그 일을 치러냈다. 그러나 그는 그 순간 이미 전설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울올림픽 폐막식날인 88년 10월 2일, 그는 자신의 봉천동 셋집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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