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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과 통화했다.
병실의 그런 적막감에 묻혀 있을때, 전화라든지 병문안처럼 반가운 것이
어디 있던가?
체험해 봐서 안다.
-그래도 의식이 또렷할때 가서 대화라도 하고 와.
머뭇거리다 기회 놓히면 안돼.
숙은 지금 시간과의 고된 싸움하고 있을 뿐이야.
언제 갈지도 몰라,그 정도야.
응암동의 복에게 당부했다.
그런 상황일때,
어쩜 친척 보담도 가까운 친구가 더 반갑다.
속내를 털어놓고 애기할수 있으니......
동네서 알아주는 훈장님였던 숙의 아버지.
하두 유명한 분이시라, 인근 동네서도 한문을 배우러 와
그 집을 지날라치면 낭낭하게 들리던 천자문 소리.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룰황.'......
음률로 들렸었다.
엄격하신 훈장 아버지를 둔 숙은 매사가 예의 바르고, 기본을 어긴적이 없었다.
양반들의 기질을 그대로 이어 받은 그녀.
보수적이고, 순수했던 숙.
우리들 넷은 그렇게 밤 늦게 어울려 놀았지만 단 한번도 정도를 벗어난 행위를
해보지 않았었다.
그저 좋아했을 뿐이지 이성으로 좋아한건 아니었다.
친구의 영역을 넘어 이성으로 느끼는 감정자체까지도 죄악으로 느낀 우리들.
그런 순수함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깊은 마음으로 사귀고 있는거 아닐가?
-손수건 돌리기.
-박수치며 유명연예인 이름 맞추기.
-밤 늦게 쩌먹는 고구마.
사춘기 시절 늘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바로 어제처럼 생생한데......
-넌,
지금도 예전 얼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아무리 오랫만에 봐도 금방알거 같아
그렇지?
-너도 그래.
나이들어 뵈지도 않고,몸도 불지 않고 마음도 변함없고...
오랫동안 내 곁에 머물줄 알았는데 가야 하다니...
너무도 안타깝다.
-과연 이런 경우에도 기적은 일어나는 것인가?
그래야 기적이지.
점차 목소리 마져 힘없어 들리니 바람앞의 촛불같은 불길한 마음만 앞선다.
'제발 힘을 내고 일어서다오, 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