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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동생의 첫 부임지라 누가 따라갔다와야 할거 같은데 어쩌지?
-제가 갈께요.
-난, 남산 네 형님께 애기할려고 했다만...
-그 촌스런 형님보담 제가 갖다올께요.
-네가? 갈수 있겠어? 그럼 그래라...
잘 하고 와야해.
아버진,
그래도 신출내기 나보담 나이든 사촌형님을 맘으로 생각하셨던가 보다.
그러실테지..
내가 세상 물정을 뭘 안다고.....
믿음이 가질 않으셨던 거지.
내가 군대있을때...
동생은 체신부9급에 합격했었다.
그리고 생소한 경상도 창녕군 남지읍 고곡 우체국발령.
농사짓는 사촌형님보담 더 낫다고 했지만...
나나 형님이나 오십보 백보.
목까지 올라오는 빨강 티에 짙은 하늘색 양복.
짧게 깎은 머리에 기름까지 바르니 가관였지.
영낙없는 촌티가 펄펄나는 그런 몰골였다.
동생을 대동하고 머나먼 창령군 남지읍에 도착한건 아침였다.
완행열차를 타고 대전, 대구로 해서 또 버스로 마산까지 갈아타고 갔으니 나주에서
가는 길은 포물선같은 형태로 간것.
넘 멀었다.꼬박 12시간을 탄거 같다.
느리게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고 새우잠을 잤지만, 눈알은 빨갛게 충혈되고
피곤한 표정이 역력해서 힘들었다.
-그냥 형님을 보낼걸 괜히 사서 고생이람?
후회가 되었다.
아무런 세상물정을 모르는 동생을 혼자 보내기 보담 딸려 보낸건 첨 상면한 상사에게
한턱(?)을 쏘고 오란애기였다.
앞으로 잘 봐달란 의미로.....
아버진 생각은 그래도 세상을 아시는 분의 처세학.
그 남지읍 고곡 우체국은 산골에 있는 작은 우체국.
실망 그 자체였다.
세상에 이런 산골에 왜 전라도 사람을 여기까지 발령낸담.
여기 사는 사람도 많을텐데...........
고생고생하고 찾아온 곳이 이런 곳이란 것에 화가 났다.
-야, 읍이면 적어도 이런 정도는 아닌줄 알았는데......
실망스럼 표정이 역력하여 처연하게 까지 보였던 동생의 모습.
잊을수 없다.
40대 중반정도의 작은 키의 온화한 모습의 고곡우체국장.
그 분과 함께 점심을 했다.
아버지 말씀대로 정중하고 경건한 접대였다.
점심을 시내로 가자했더니 가봐도 별로 다를게 없단 애기.
허름한 식당에서 매운탕에 막걸리 대접인거 같다.
-애가 사회생활도 첨이고 학교졸업후에 온거니까 잘 좀 봐 주십시요.
아무것도 모릅니다.
나이도 어리고요...
-걱정마세요.
사람좋게 보인 우체국장의 말.
믿음이 갔다.
점심후에,
국장 관사에서 한숨자라고 배려해준다,
둘이서 한숨잤지만 말똥 말똥했다.
방을 얻을때 까지 관사서 지내란 애기.
그런 배려가 고마울따름...
그날,
5시경 헤어지곤 돌아왔다.
혼자 두고 떠나올려니 어린 딸을 시집 보낸 아버지 심정 같은것.
-그냥 갈거야?
더 있다가 가면 안돼?
몹시도 맘이 놓이지 않고 불안한듯한 동생의 표정.
-그럼 가야지.
왜 그렇게 서둘러 올려고만 했을까?
하룻밤을 새고 왔어도 좋았을걸........
바쁜일도 없는데...........
와선 아버지께 혼났다.
-참 아무리 속이 없다고 해도 그렇지
거기가 어디냐?
그곳까지 갔음 하루라도 있다가 방이라도 얻어주고 와야지 그냥와?
그래서 네 형을 보낼려고 했던거여...
어쩌면 그렇게도 생각을 못해.....
-궁금하실가봐 그랬지요 기다리고 계실까봐...
-뭐가 궁금해,
네가 오면 알게 될걸.
몇년간 경상도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서울로 오게 한건 내탓.
넓은곳에서 살아야 희망이 있다는 그럴듯한 말로....
그 공기좋은 곳에서 살게 할걸................
서울로 온 탓에 죽은거 같아 동생만 생각하면 죄짓는 기분이다.
인명은 재천이긴 하지만....
경상도 사나이로 살아가고 있다면 혹시나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지금 곁에 없는 동생.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