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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3인방이 있었다.
석, 진, 그리고 나.
40여호의 작은 동네에서 맘이 맞았던 3명의 친구들.
같은 띠에 취미도 비슷한것도 그거지만...
3인방으로 될수 밖에 없었던 것은, 한 동네서 고교에 진학하였던 애들은 통 털어
3사람이 전부.
요즘에야,
고등학교 다니는 것은 당연지사지만.....
그 당시론 고등학교 간단 것은 힘든일였다.
대 부분은 간신히 초등학교 나와서 농삿일하는것이 다 반사였다.
입에 풀칠하기도 벅찬 시절.
먹는단 문제가 지상목표.
가난해서 상급학교 진학한단 것은 꿈도 못꿨다.
-부자라던지,
부모가 교육열이 월등히 높았다던지...
그런 것이 아니면 놀수밖에 없던 현실.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고 선택권은 아예 없었다.
가장인 아버지의 말씀은 지상명령였다.
석과 진은 읍내로 다녔고,
난, 그들보다 30분을 더 가야 하는 변두리 학교.
내가 다닌 학교는 장학생제도가 있어서였지.
천석꾼인 석과, 한약방을 경영했던 진은 우리집보담은
훨씬 여유롭고, 부자였다.
지금에 생각해 보면 부자라고 해야 도토리 키 재기지만....
암튼,
우리 셋은 다른 부류들관 다른다는 우월감으로 우리끼리만 놀았다.
일종의 선민의식였을까, 엘리트 의식였을까..
이름도 없고, 알아주지도 않은 시골의 고등학교.
그 지방의 ㅈ 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무슨 뱃장으로 그렇게
우월감에 사로잡혔을까?
-교모를 꺽어 쓰고, 꽉낀 교복은 나팔바지로 만들어 입었고....
번쩍 번쩍 빛나게 닦아서 신는 워카구두.
징을 박아 저벅저벅 소리를 내면서 걸었던,그 시절학생들의 트렌드였다.
지금봐도 그 모습은 멋있을거 같단 생각이 든다.
우리집은,내 방이 없지만..
석과 진은 따로 자신만의 공부방이 있어 함께 놀았다.
-이성애기, 연애편지 쓰는 법.
-향과 숙, 복의 애기를 하면서 깔깔대던 모습.
-숙의 볼륨있는 가슴에 얼굴이 뜨거워 한다는 등..
여자 애기만 나오면 시간가는줄 모르게 떠들었다.
겨우 한단 것이 한 동네 여자에게 연애편지 전하고...
보기 좋게 공개딱지 맞았던 석.
-석아, 난 너와 이렇게 사귀고 싶지 않아.
그냥 지금처럼만 그렇게 만나자..
이런 편지 받음 왠지 너와 더 멀어진거 같아.
난 한번도 널 애인같은 그런 감정을 가져보지 않았어.
동네 친구사인데 무슨 연애니...
나 이거 없었던 걸로 할께..
지금 생각하면 그럴만도 하지,
녀석의 외모가 그리 호감가는 타잎이 아니거든...ㅋㅋ
둘은 담배를 피웠지만, 난 배우지 않았었지.
딱 한번 경험.
향의 앞에서 남자다움을 보여준다고 거드름을 피우다가 목구멍이 따가워 혼났던 경험.
-담배 피운모습이 왜 그렇게 멋져 보였는지....
-김 기수 같은 권투선수가 꿈이라던 진.
-이 광재 같은 유명아나운서가 꿈이라던 석.
-유명판사가 꿈이었던 나.
지금 생각하면 참 야무진 꿈(?)도 꿨다.
그 꿈은 이뤄보지도 못하고 공직에 투신하여 모두들 광주에 산다.
꿈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현실에서 안주.
되돌아 갈수 없어 더 그리운 시절.
여름이면 너른 저수지에 펌벙뛰어 들어 수영하고, 칼 조개도 잡았고..
겨울이면 빙판으로 변하는 저수지 위에서 해 지는줄 모르게 썰매를 타던 기억.
그 신나던 추억을 어찌 잊으리..
-<맨발의 청춘>과 < 첫 사랑 마도로스><세드무비> 유행였고..
-이 광재의 퀴즈열차가 인기프로 그램인 시절.
3인방 시절이 그리워 지금도 가끔 전화로 애기함서 히히덕 거린다.
-너, 그때 숙일 정말로 좋아했니?
-넌, 향이 좋아했음서 뭐 그래?
-너 처럼 딱진 맞지 않았다 바보야....
지금생각해도 부끄럽다 임마, 연애는 공개적으로 하는게 아냐..
네가 공표해서 그런지도 몰라.
-그애가 바보니까 그렇지.
나 만났으면 행복했을텐데...
-미친놈 ㅋㅋㅋ..
철부지 시절의 3 인방.
그 때가 그립다.
손을 내밀면 닿을거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