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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초딩친구 갑식이 아들 결혼식이 광주에서 있었다.
서울 거주하는 친구들이 모여 관광버스 하루전세내 내려갔다.
재호, 창기, 기헌이는 와이프까지 동행하고서...
고속버스를 이용할바엔 이게 더 편하고 자우로울거 같아서지.
아침엔,
뇌성벽력과 비 바람이 세차게 몰아쳐 들기 싫은 우산을 들어야 했다.
나들이 갈때처럼 우산이 거추장스러운 물건이 어디 있을까.
잠실역 7시 50분 도착이라니 아침도 굶고서 갈수밖에...
전용도로로 달려서 그럴까?
3시간 반만에 광주도착.
예식시간까지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상록회관>
공직자들은, 여길 이용하면 저럼하게 이용하는 거라 많이들 한다.
-김 갑식.
어려서 어찌나 육자배기를 잘 부르던지.지금도 생생하다.
자기 아버지가 육자배기를 잘 해서 어깨넘어도 배웠다고 하는데..
감탄을 자아내게도 잘 했었지.
그곳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공직을 마칠때 까지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 탓에 많은 친구들
이 주위에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린 이방인 같은 존재들.
군 제대하자 마자 면사무소 임시직으로 잠간 몸 담았을때..
하나 하나 친절이 어드바이스 해 주던 홍 기철씨와 김 대식씨도 왔다.
세월앞에 어쩔수 없는지 완연한 노인 모습으로 변한 그 분들
그래도 반가웠다.
잠은, 나주에서 농삿일은 틈틈히 시골에서 한단다.
생활만은 도시인같이 하고 싶단 애긴거지.
공기좋은 곳에서 몸담고 적당히 운동겸 하는 일은 건강유지에도 좋을지 모르겟다.
헌데 행복해 보이지 않은건 왜 일까?
갑식이의 배려로 우린 일반하객을 접대하는 식당이 아닌 다른곳으로 이동해서 일식횟집으로
가서 먹었다.
서울친구들과 지방 친구들 합쳐 30여명,
초딩 졸업후 첨 보는 놈들도 있었다.
-야 저앤 많이 본 친군데 누구냐?
슬척 옆에 창기에게 물었다.
-저 친구가 최 경환 아니냐, 모른거 같애?
-그래 그래 맞다.
3학년때 작난치다 그 친구의 어깨가 부러져 응급실로 실려갔던 기억.
그리고 호랑이 오 수섭 선생에개 매를 맞았었던 기억이 난다.
작난치다 그런걸 매 까지 때릴게 뭔가?
바로 최 경환이가 그 친구다.
그때 그 생각하니 윳음이 나온다.
식사후,
백양사 단풍구경한단 핑게로 3시경 귀경차에 올랐다.
코흘리게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끝이 없을거 같다.
그들의 배웅을 받으며,
-모두들 건강해라, 담에 또 보자.
이산가족 이별처럼 어딘가 좀 허전하고 그렇다.
백양사는,
아직은 단풍의 곁에도 가질 않았다
잎들이 아직은 생생하다.
11 월 초가 절정이라고 하는데...........
백양사 경내만 돌아봤다.
-야, 저 칠성각이 뭣하는곳인줄 아냐?
-아들 낳아달라 백일불공 드린곳 아냐?
-구체적으로....
-백일치성 드린곳이라니까 왜 그래?
-야, 지금이나 그때나 없은 아들이 백일기도드린다고 생기냐?
-그럼??
-ㅋㅋㅋ...
자식없은 여자들 소원 풀어드리는 곳이야.
누이 좋고 매부좋고...
-설마??
-모르면 물어봐라. 저 놈이 순진한건가 바본가 몰라.ㅋㅋㅋ..
웃었다.
그럴듯한 애기다.
마지막 퇴임을 앞두고 우린 몇몇이 여길왔엇다.
어찌나 단풍이 곱게 들었던지..
붉게 타는 단풍잎 밑에서 우린 한참을 헤어나질 못했다.
진홍색의 단풍을 쥐면 손바닥이 붉게 불들거 같았던 그때...
휴일이라서 인가.
나들이 객은 간간히 눈에 띤다.
서울 도착도 비교적 단 시간 걸린거 같다.
8시 30분경.
노래방 시설이 된 관광버스에서 노래 부르면서 오다 보니 시간이 금방이다.
이런 즐거움땜에 관광버스를 세 낸것.
ktx에서 이런 기분을 어떻게 느낄건가.
갑식에게 친구의 도리를 한거 같아 후련하다.
몸은 약간 피곤했지만...
이렇게 사는게 바로 <삶>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