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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2 일째

제 5공화국

정계내막을 다룬 실록 <제 5공화국>을 읽고있다.

제 5공화국은,

박 통의 서거후에 힘의 공백기를 틈타 권력을 쥔 전통의 시대를 말한다.

12.12사건을 이르켜 소장파 군부가 실권을 거머쥔 사건.

 

정치군인였던 전통이 보안사령관이란 요직에 있으면서 군의 실태를 파악했고,

계엄사령관겸 육참총장인 정승화를 제거해야만 명실공히 실권을 쥘수있엇던 상황.

5.16구태타를 이르킨 박통이 장도영을 제거했듯이...

많은것이 비슷했다.

국가재건 최고위원회를 본따 <국보위>를 설치한것도....

 

유신의 기둥엿던 박통의 서거후에 아무도 없었다.

합수본부장이란 막강한 권한을 이용해서 야욕에 불탔던 그.

군의 통수권자의 재가도 없이 계엄사령관을 불법연행한 폭거.

연행후에, 최 규하대통령권한대행의 결재는 새벽 4시경였으니.....

끝끝내 재가를 못 받았다면 그건 엄연한 불법행위고 처벌 받아야 할 행위였다.

하긴,

정권욕에 불탄 그가 허수아비인 최규하권한대행을 진정한 실세로 봤겟는가?

우유부단하고, 엉거주춤한 최 권한 대행.

신속하고도 결단력있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던들 그렇게 바보같이 권력을 바치진 않았을텐데....

정치일정을 공표하고 신속하게 선거를 치뤄 정권을 넘겨줬으면 적어도 민주화는 더 빨리 이뤄졌을텐데..

모든 환경은 전통을 대통령 만들기에 최적였고 그걸 이용한 그.

 

계엄사령관이란 막중하고 어머어마한 직책에 있었으면서도

힘없이 끌려간 정 승화 사령관.

불운한 군인였다.

<장군 진급자 축하파티>란 위장된 모임으로 장 태완 수경사령관, 정병주 특전사령관, 김진기 헌병감

등의 발을 꽁꽁 묶어버리고 거사를 모의했던 야심찬 장군들.

일개 보안사령관인 전통은 이렇게 긴 시간동안 머리를 써서 권력을 쥐기위한 수순을 밟았다.

그렇게 경복궁에 모인 군의 실세들.

노태우 황영시, 차규현,....

나중에 주요요직에 오른 인물들.

허나,

역사는 아이러니 하다.

그때 장 태완 수경사령관이나 정병주 특전사령관이 출동해서 접전햇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아군끼리의 총격전으로 내란을 불러왔을지도......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으니 아찔한 순간였지.

 

그리고,

5.18광주민주항쟁을 불러이르킨 광주학살.

그때의 악몽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천인공노할 만행.

언론과 방송이 입을 다물고 침묵하고 있었지.

총구앞에 모두들 벌벌떨고 있었다.

<무관의 제왕>이란 어디로 갔는가?

바른말 잘 하던 이땅의 지성들은 다 어디로 가서 몸을 숨겻던고?

어떻게 외부에서 알겠는가?

광주에서의 만행을..........

무고한 시민을 폭도니 깡패니 , 불온분자니 하면서 총을 난사한 우리의 군인들.

 

교회에서도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천주교>는 예외였다.

비정한 현실을 결코 외면하지 않았단다.

성직자인 신부들 마져 시민과 함께 행동했다니 얼마나 대단한가?

<윤공희>대 주교의 용기있는 결단.

불의앞에 결코 주저앉지 않은 그 분은 진정한 성직자였다.

광주의 상황을 각지방 전주교에 전파하여 실상을 알게했다.

백주에 도심에서 벌어진 살육의 만행.

비로소 고 김 수환 추기경도 그래서 알았단다.

 

그런 만행의 현장을 목도하면서도 <행동하는 양심>을 보이지 않았던 일부 지성인들.

얼마나 양심의 가책에 가슴이 답답할까?

 

80년대의 한국.

서울의 봄은 그렇게 피비린나는 참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남쪽지방의 그곳에서...

 

30여년이 다 되어 오지마는...

바로 엊그제 같이 새롭다.

 

-과연 진정한 민주화는 이뤄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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