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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서 <이별>은 숙명같은건지 모른다.
이별뒤엔 늘 외롭고 씁쓸한 공허감이 드니.....
-즐거운 이별이 있는가?
영란이가,
가평의 <다일 평화마을>에 3 개월간 체류일정으로 입촌.
지난번 갔다온 뒤로 감명을 받았나 보다.
-아빠도 한번 가서 들어봐.
너무 좋아요.
아빠 정도의 연배든 분들도 많던데....
-난, 한가하지 않아서........
-피~~~
다일 평화마을은,
최일도 목사가 만든 마을이란다.
헌데,
그곳에 입촌하는것도 아무나 가는건 아닌가 보다.
단기는 아무나 가지만 그 정도의 기간을 입촌해서 생활할려는 사람은
면접을 통과해야 한단다.
자격있는 사람을 선발할려는 의도일까?
물론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긴 하지만,
<참다운 행복과 삶>을 지향하는 체험이라 여러모로 프러스가 되겠지.
-외부와의 연락도 안되고...
-외부에서 연락할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그 생활이 편하고 보람된단다.
그 안에서 완전몰입해서 새로운 삶을 배운다고 하니......
핸폰도 해약하고 가겠단다.
그 정도로 야무진 결정을 한건가,,
영란이도 고집이 보통이 넘어 결정하기까지 갈등을 하지 일단 결정을 하고 나면
아빠의 의견이나 엄마의 의견은 참고사항 뿐...
-아빠는,
널 믿어.
네가 판단해서 유익하다 생각하면 언제든 밀어줄께.
-알았어.
3개월 생활비를 먼저 송금했다.
1095000 원을 텔레벵킹으로 .........]
2007년도 미국으로 갈때도 상당한 기간 동안 갈등을 했었고...
여자인 몸으로 미국이란 생소한 나라에 보낸단 것이 조금은 불안도
했지만 <대학생 선교 봉사단>이라는 것에 위안이 되어 기꺼이 보냈었지.
1년간의 이별였지만 왜 그렇게도 섭섭했던지.......
마치 이민이나 보낸것 처럼 그런 심정였지.
그러고 보니 엊그제 세현이에게 갑작스럽게 면회를 간다길래 의아해 헸더니
이런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어서 그랬구나..
보통정도의 곳에 취업이나 했으면 좋으련만......
취업이 늘 <종교>와 관련이 잇는곳엘 선호한가보다.
-첨부터 입에 맞은 떡이 어디 있니?
아빠도 첨엔 시골면사무소 임시직으로 출발했어.
그러다가 궤도 수정을 하면 되지.
어떻게 100% 맞은 곳을 갈수 있다고 생각해?
-100%는 아니래도......
어느 정도는 적성에 맞아야지.
-그건 그렇지.
대화를 해 보면 어른스럽기도 하지만....
여전히 애잖해 보이는 어린애로 보인건 왜 일까?
3 식구가 살다가 훌쩍 떠나버리면 더 휑뎅그래 비어보일텐데.....
그래, 이건 이별연습이야.
언젠가는 해야 할 숙명같은 이별.
슬픈 단어 이별.
이별없이는 살순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