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Sign Up
배가본드
끊기면 또 만들면 되죠 이게 세상사 입니다 : 6 일째

비극

-29일 토요일 김 길환, 김 의용이가 별세하여 횡성 장례문화의 집에 모셨습니다.

어제, 아침 눈을 뜨자 누군가 보낸 문자 멧세지.

의아했다.

김 길환?

그리고 김 의용??

길환이라면 흥래형님 두째 아들인데 의용인 누굴까?

 

다짜 고짜 횡성 장례식장으로 문의했다.

-네 맞습니다

연고지가 원래 서울인데 이곳에 정착해서 산지 몇년 되었구요

교통 사곱니다.

-네 당숙, 맞아요.

길환이와 그 아들이랍니다

교통사라고 하는데 저 가는 중예요

 

어제  낮 12시 친족 모임이 있는 날.

맘 같아서야 달려가고 싶지만 모임에 참석하고 갈 생각였다

혹시나 누가 함께 갈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갈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 먼 횡성까지 동행할 친척은 없다

직장이니 바쁘니 .........

성북동 매형이나 왔으면 동행하려 했는데 그 분은 7순이라 여행중이란 애기.

혼자라도 가야 한다.

이건 어쩔수 없다

물론 고인과는 조카 사이긴 하지만 4 촌형님 아들이니 가까운 친족중에도 가까운

친족임에야 어쩔도리가 없지 않은가.

 

청량리도 갔다.

매 시간 마다 원주로 가는 기차가 있단 정보를 입수했고...

2시간 정도 소요된단 것도 미리 알았다.

3시 정각에 있단다.

그러니까 십 여년전,

j와의 밀월여행(?)을 하기위해 청량리에서 기차 여행한거 빼곤 첨이다

새 역사를 짓는가 보다

복잡하다.

-일반객실은 없구요 특실밖에 없네요

-그럼 특실로 주세요.

 

기차가 편안하다

넓고 수시로 변하는 차창풍경에 기분전환을 할수도 있으니까..

제천 원주 그리고 종점은 안동까지 이어진가 보다

-항상 웃는 얼굴과 사근사근한 목소리.

길환이가 그런 형이다

향년 46 세.

이렇게 비명횡사할줄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그리고 그런 아들을 하루 아침에 잃어버린 형님의 마음인들 얼마나 칼로 에이듯

아플까...

 

-너 어디서 살고 있니?

-강원도 횡성예요.

공기좋고 인심좋아 살기 좋아요.

-헌데 왜 그런 오지에 살려고 그래?

이제 좀 형편이 나아졌으면 나와라

서울 사람이 서울에서 활동해야지 그게 뭐냐?

꿈도 희망도 없는 그런곳에....

-당숙, 전 그곳에 너무 좋아요.

저의 몸도 얼마나 좋아졌는데요.

몇년전에 그런 대화 나눈적이 있었다.

전혀 연고도 없는 강원도 횡성에서 둥지를 틀고 살고있단것이

너무 이해가 되질 않았었다.

물론 빚 독촉에 어쩔수 없이 그런곳에 칩거 한건 알지만

너무 안되어 보였다.

 

원주에 내린건 5시경.

아직 사방은 어둡지 않지만 왠지 날씨가 을씨년 스럽게 느껴졌다

내 마음이 그런가...

눈은 내리지 않지만 너무춥다

어제 찬 바람속에서 있었더니 감기기운도 들고 컨디션도 엉망.

-횡성행 시내 버스.

한 30 분 달린거 같다.

-여기서 택시타고 가세요 아마 금방 도착할겁니다.

<장례식장> 시내서 한참 떨어진 산골짜기에 있었다.

건물이 산뜻한게 신축한지 얼마되지 않았나 보다.

깨끗하고 웅장해 보였다.

그 웃는 모습의 길환과 앳되어 보이는 의용이의 영정.

천당가는 길도 함께 그렇게 다정한 모습으로 동행한걸까?

꿈도 피어 보지 못하고 이런 오지에서 생을 마감한 길환과 철부지 아들

의용이의 영정.

웃고 있는 영정이 왜  그렇게 처량해 보이는 걸까...

누가 이 부자를 이렇게 참혹한 현실로 인도한걸까...

 

 

<인간의 슬픔>

청천벽력같은 비보를 듣고 달려온 형님과 형수.

-아버진 너무 아프실거 같아 가셨어요 어제..

경환이가 그런다.

-그럴테지,

뭣하러 아들이 죽은 그곳에 어버지가 있어야 하는가?

가만 있어도 창자가 에일듯 아플텐데.....

아들 학교 등교시켜 주기 위해 가는 길에 육중한 스포티지가 덮쳤단것.

옆을 덮쳤는데 운전수는 머릴 다치고 아들은 목이 부러지고 해서 즉사했단다.

조각난 시신을 수습하여 다시 꿰메고 손질 했단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은 오죽할까..

얼마나 아플까?

이런 참혹한 죽음이 아닌 병사를 한 아들을 두고도 당신은 돌아가실때까지 맘 편히

갖어본적이 없었는데......

부모의 맘은 매 한가지 일텐데......

 

너른 홀에 꽉 찬 조문객.

-길환이가 여기서 너무도 봉사활동을 열심히 해서 횡성군민들이 이렇게 와 준겁니다

이게 상상이나 됩니까?

오죽했음 길환 보고서 담에 국회의원한번 하라고 농담까지 했답니다

창환이가 애기한다.

낯선 타향생활 8년.

그곳에서 얼마나 살기 위해서 이렇게 온몸으로 봉사했음 이 많은 사람들이 와 주었담..

세삼 살기위해 발 버둥친 길환이의 애환이 보이는거 같다.

친척없고 친구없는 그런 곳에서 여러사람에게 어필할수 있는것은 인정 받은

사람이 되는 길.

그 길밖에 뭐가 더 있는가..

그 세월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창현이와 한참동안 대화 나눔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데 신사동 형수가 아들과

함께 들어온다.

못 온다고 해서 부의금을 갖고 왔는데.........

<씨는 못 속인다고 어쩜 녀석이 그렇게도 광래 형님을 닮았을꼬??>

작달막한 키에 웃는모습, 그리고 둥글게 생긴 모습까지도 붕어빵.

밤을 세울려던 계획이 이 녀석이 오자 함께 동승하여 왔다.

-당숙 함께 밤을 세운다 해 놓고??

-그럴려고 했는데 이렇게 차를 갖고 왔으니 그냥 갈래.

조문객도 이렇게 많으니 쓸쓸하진 않고.........

못내 아쉬운가 보다,

함께 밤을 세움서 술잔을 기울일려고 했는데....

 

네미게이션을 장착한 차.

너무도 편하게 잘 달린다.

음성으로 지시를 하니 제 길로 달려오니 서울이 금방이다

딱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물론 밤길이라 막히지 않은탓도 있지만 네비게이션 의 덕이

큰거같다.

컨디션도 엉망이고, 그 먼길을 간단 것도 부담되었고..

그런 여정이 결국은 밤 11시에 끝났다.

자식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형님.

좀 시간이 지나면 찾아 뵈어야지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어쩔건가?

손 아래 동생이라도 찾아가 위로를 해 드려야지.

삶과 죽음.

생과 사의 이별.

그런 이별도 아플텐데 아들과 손자를 한꺼번에 잃어버린 형님의 맘.

그 아픈 마음을 어떻게 위로해 드려야 할까....

비극중의 비극.

그건 이런 경우가 아닐까..

 

 

 

Write Reply

Diary List

12 1992 사랑과 고독, 그리고... 7003 독백 98

History

Kishe.com Diary
Diary Top Community Top My Informa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