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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서울에 와서 얼마간 머물때의
금화 아파트 102 동 504 호
김현옥 시장의 불도저란 별명이 어울리게
상당히 가파른 산중턱에 세워진 아파트
물론 서울중심으로의 진입이 쉬워 살긴
좋았었지.
독립문쪽에서 보면 산 중턱에 세워진 아파트
들이 마치 마천루처럼 높게 보였다.
그래도 그렇지..
도심의 산은 그렇게 보전하고 좀 외곽으로
집을 지었으면 좋았을걸...
지금도 있는가?
70 년대의 첫 인연을 맺은 아파트가 바로
금화 아파트 였고 결혼생활을 시작한것도
바로 11평이 될가 말가한 아파트
잊을수없다
그런 추억들을...
연호 형님은,
그당시에 집을 갖는단 것이 하늘처럼 높아
보이던 시절에 그런 아파트를 소유할수
있었다.
부러웠다.
비록 11평이긴 하지만.....
방이 달랑 두개, 화장실은 한동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변소가 별도로 있었다.
문만 열면 인왕산 봉우리가 바로 눈앞에
보였고 멀리 남산이 가까워보이던 풍경.
공직생활에 첫 발을 내딘 나와 안정적인
가정과 아담한 집을 소유했던 연호 형님.
그리고 중앙부처에서 남들이 부러워했던
직장.
서울 구치소 말단직원으로 부임했던 나.
비교가 안되었었다.
-난 언제나 이 정도 아파트 한개 살수
있을까?
꿈였다.
그런 꿈은 결혼과 동시에 와이프의 힘(?)
으로 이룰수 있었지만.......
내 봉급으론 상상할수 없는 거금였거든..
1979 년 680 만원이면 얼마나 될려나?
지금 한 3 억??
잘 나가던 직장.
그 직장을 어느날 퇴직한단 소문.
하긴 그 당시에 연호형님은 승진을
몇번인가 실패했었다.
편한함에 안주한건지 아님 그렇게
승진이란 것이 절실하지 않은건지...
-아니 안정된 직장을 마치신것이
더 나으실거 같은데...??
-s.o.s마을의 총부부장으로 오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낫겠죠.
신앙심이 돈독한 형님의 신앙심을
인정한 건지 그곳으로 오란단다.
물론 봉급도 더 많은거고...
부럽기도 했지만 한편은 걱정도 되었다.
거긴 임기제이기 때문에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직장이기 때문.
허지만,
그때 그 형님은 자신의 답답한 현실에서 탈줄
해서 명예 회복이 더 컷던가 보다
물론 동료직원들의 부러움도 삿겠지.
허지만 인생의 앞날은 누구도 예측을
할수없는것.
한동안 총무부장으로 안정된 생활과 퇴직후엔
구의원으로 화려하게 복귀했었다
2번이나...
그리고 또 다시 두번의 도전 실패.
화려한 옛날을 꿈꾸며 도전했지만
야박한 인심은 그를 외면했다
야박한 인심이라가 보담은 바람.
<한 나라당>의 폭풍앞엔 어쩔수 없었다.
인품이고 청렴이고 무어고 없었다.
-마지막만 나가지 않았어도 이러진 않을텐데..
두번의 실패는 빚만 지게 했단다.
달콤한 권력에의 향수를 잊지 못해서 그랬을까?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지만 도전했던 형님.
그리고 여지없이 낙선.
낙선후의 그 후유증과 남은 빚.
지난번 낙선하곤 퍽 어렵나 보다.
-내가 얼마나 말렸는데요 헌데도 당신은
꼭 될거 같은 생각이 들었나 봐요
자식들도 말리고 그랬는데 추종자들이 자꾸
부추겼었어요
귀가 얇은 당신이 그런 말에 솔깃한거죠.
그 고집에 내가 미친다니까요.
형수의 말이다.
권력은 마약같은건지 모른다
한번 그 맛에 길들여 지면 끊은단것이 사실
어려운것.
하긴 구의원이 되었다면 그 나이에 어떻게
그런 융숭한 대접을 받을수 있었을까?
자식들이 셋이나 되지만 자신들 살기도
빠듯한 생활에 도움주기도 어렵나 보다.
내가 부럽단다.
오직한 길을 묵묵히 걸어왔고 현실이 그런
궁핍한 생활을 하지 않는 내가......
공직생활 30 여년.
한눈 팔지 않았었다.
한번 딱 판건 사실였지만 그건 와이프의 권유로
포기한것.
결혼전에 와이프가 운영하던 <사출기 공장>
-당신하던 그 사출기 공장 내가 운영하면
안될까,하고 싶은데....??
-당신은, 그런 생각말고 그 길로 가요
공장을 아무나 하는줄 알아요?
얼마나 어려운데...
괜히 그러다 직장까지 잃고 공장도 잘못 운영
하면 어떡하려고...??
그렇게 성규가 하겠단 것을 말린게 난데...
그리고 그 공장은 여태껏 옆에서 도와준
임씨에게 넘겨야 해..
-알았어.한번 해본소린데 뭘...
아무런 능력도 없이 그저 사장소리 듣고
파서 해보고 싶었을 뿐...
물론 와이프가 권장했으면 했을지도 몰랐지만..
-한 우물을 파라했다.
난 비록 화려한 공직생활을 해 본건 아니지만
현위치에서 성실하게 근무했고...........
남들이 거의 한 두번의 징계 같은거,
불명예스런 퇴임을 한것도 보았지만
그런 불상사 없이 마감할수 있었던건
나름대로의 나 만의 원칙과 기본을 늘 간직한
것이 아니었을까?
-아부 잘하고...
-그때 그때 분위기에 편승하여 나갔더라면
더 높은 지위를 얻었을진 몰라도 과연 그런
생활이 행복하고 성공한 삶이라고 할수
있을까?
대과없이 마감하고 비록 최상위의 표창은
아니지만 그래도 <녹조근정 훈장>을 타면서
마감할수있었던건 한 길을 묵묵히 걸어온
나만의 철학이 있었던게 아니었을까?
-자네 시험에 합격을 축하하고 오픈하면
나 채용해 주게.
내가 다른건 몰라도 운전은 기막히게 하고
멋진 차도 뽑을께...알았어?
-아직 발표도 안했는데 뭘...??
내가 삶의 밑바닥에서 방황할때....
지향점을 몰라 신앙촌의 그의 공장에서
고단한 공원으로 잠시 생활할때 그는
떵떵거리는 비니루 공장사장의 아들.
전도가 낭낭했었지.
한동안 사업가로 번창했었고...
내 밑에서 일을 도와 주겠다니..??
참 아이러니 한 인생.
첫 출발의 화려함이 중요한게 아니다.
그런 화려함이 죽을때까지 이어진단것.
그게 더 중요한거 같다.
물론,
모든면에서 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
별로 부러운것도 없다.
그렇게 자족함서 산다.
다만,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 세현이란
놈을 생각하면 답답하긴 하지만......
어떻게 부자간인데도 그렇게 사고의 차이
가 나는걸까...
한때의 영광이 항상 곁에 있어주는것도
아니고 한 순간의 어려움이 항상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늘 자신만만함으로 그리고 정도에 산다면
자신에게도 여유로운 삶은 올수 있다는것
연호형님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느끼는
소회다.
늘 정도와 기본원칙.
이런걸 중용의 도라고 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