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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2 일째

제 2 신앙촌

소사 1신앙촌, 덕소 제 2신앙촌,기장 제 3신앙촌.

가장 초창기에 세워진 곳이 소사 제 1 신앙촌였다.

그리고 신앙심이 돈독한 사람이 들어갈수 있는 곳이 제 2 신앙촌

그리고 다음이 최고신앙인들의 거주지 경남 기장 3 신앙촌.

 

소사에서 안내원으로 함께 근무했던 광남씨.

지금 덕소에서 살고 있다.

이번 주 토요일에 자기집에 오란다.

옛날 안내원 시절에 함께 근무한 직원들을

부른단다.

 

광님씨와 난 거의 막내격이엇던거 같다

나이가 서로 비슷했지만 안내원 중에서

젤로 나이가 어렸으니까...

 

-아니 그 날이 무슨 날이야?

생일이라던가..

-아냐...

그냥 예전의 사람들 보고 싶어 부른거야

부담없이 와줘.

용산에서 덕소가는거 전철있어

한 40 분정도면 도착할거야..

-알았네..

 

가장 어려운 시절에 그리고 방황의 시절을 보낸

신앙촌 생활 2 년.

단 2 년간의 생활에서 왜 이렇게 잊혀지지 않고

각인되어 있을까?

 

한번도 떠난적없는 고향을 떠나 타향으로 간단 것은

쉬운것이 아니었다

허지만 너무도 암담한 장래.

내일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

그 와중에서 이모할머니의 신앙촌

애기는 환상의 세계처럼 들렸었다

<그래 내가 탈출하는 길은 바로 신앙촌

으로 가는 길 뿐야..

어떤 선택이 있을수 없어>

-이상향였나?

아니었다

냉혹한 현실이 거기에 있었다.

내가 꿈꾼 그런 이상향이 아니었다.

 

-공부도 하고 돈도 벌고..

그럴 야심은 여지없이 깨졌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선 일을 해야 했다

흥미도 없고 소질도 없는 일들

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다

그래야만 목구멍을 유지할수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들어간 <안내원>

말이 좋아 안내원이지 경비였다

신앙촌을 지키는 수비대.

 

군대처럼 단체 생활을 했었고

나름대로 젊은사람들과 합류하다 보니

작은 꿈이나마 꿀수 있었다.

입대 하기 전까지........

신앙촌 생활 2 년,

귀가할땐 맨 몸이었다.

겨우 목에 풀칠하기 바뿐 수준의 보수

당시의 안내원 봉급이 800원이라면?

지금 얼마나 될까?

한 10 여먄원??

<신앙>이란 미명하에 노동력을 착취한

그 자들.

다들 그랬었다.

취직한다고 해 보아야 겨우 교통비 정도

모든게 주님사업이라고 하는데야 누가

토를 달겠는가?

 

암담한 시절에 한때 한 직장에서 몸을 담고

애환을 나누던 친구들

그들과 하루 정도 담소 나는단것이 무의미

한것은 아닐거 같다.

다 예전의 것들은 다 소중한 것들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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