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of Challenge
쓴 일기가 사라져 버려 이렇게 도전변을 쓰네요 답답합니다 :
49 일째
오랫만에 찾은 응암동
2006-12-10
See : 754
Reply : 0
Write Reply
Diary List
History
일기 작성시 태그를 입력하시면
이곳에 태그가 표시됩니다.
일기장 설정에서 숨길 수 있습니다.
이곳에 태그가 표시됩니다.
일기장 설정에서 숨길 수 있습니다.
여기 쪽지기능 안되는것 같아요.방금도 보냈는데 전송되었 

그게 아니구요 제가 옥상방수 이전 일기였는데 3개 댓 

이메일 말이죠? 누가 볼까 지웠죠 혹시? 누가 이상한 

배가본드님 반갑습니다.제 댓글 3개는 어디갔을까요?읽으 

그럼요 당이 중요한게 아니라 서민의 아픔을 아는 사람. 

한 사람의 착오판단으로 이런 민심을 둘로 갈라쳐놓은 과 

대통령 취입시 파면 꿈에도 생각못했겠죠!!!임기도 못채 

파면선고 봤어요.모두 정신바짝 차려야 하겠군요.전에도 

그래요 잘 살아야 합니다 한번 뿐인 인생이니...오늘 

결론은 잘 살아야겠습니다. ㅎㅎㅎ좋은밤 되세요.^^ 

응암동을 오랫만에 찾았다.
1979년에 결혼하기전에 와이프와 늘 만났던 곳이 응암동였다.
직장이 가까운곳에 위치해 있었던 이유였겠지..
이틀이 멀다고 우린 자주 만났었다.
데이트 장소에 조카 철웅이를 델고 나왔던 와이프.
_언니가 병원에 있어서....
결국은 응암동에서 만났었고 결혼까지 꼴인 할수 있었던 것은
와이프 집이 응암동였던 탓이었다.
-그런 정열, 그런 성의..
지금은 다 어디로 가고 만걸까..
그 곱고 곱던 와이프
부잣집 며느리 감이라고 애기했던 사촌들
지금 와이프는 그런 모습은 어디고 없다
병들고 지친 얼굴,
당뇨로 인해서 약이 아니면 견딜수 없는 그런 몸,
보기에 안타깝다.
헌데도 왜 그렇게 건강을 챙기지 않은지...........
-아니 당신이 앞으로 몇 십년을 살것 같애?
이젠 좀 쉬고 편히 살란 말야..
-.......
귀에 들어오지 않은듯 듣는둥 마는둥 한다.
이런 고집쟁일 왜 몰랏을까?
거의 100% 참석했던 친척들
요즘은 다 모이지도 않는다.
늙어서 일까?
수원의 대현인 질녀와 함께 왔다.
형님 대신으로.........
25평형이지만 오르기 전에 사서 상당히 올랐단다.
-아마도 1억 정도는 오른거 같아요.
-그래..그때 사길 잘 했다.
나도 아파트 살려다가 결국은 단독을 사고 말았다.
너무 올라 엄두를 못내겠더라...
다큰 딸을 연탄가스로 잃어 버리고 마음에 홧병이 들어
매일 술로 연명하다가 천수도 누리지 못하고 가신 광래형님.
그 연탄가스로 간신히 살아난 아들이 이젠 결혼해서 딸까지
낳았단다
지하에 계신 형님은 감회가 어떨까..
<너를 살리기 위해서 아빠는 어쩔수 없이 딸을 포기 했단다.
두명중에 한명을 포기 해야 했던 상황였으니.........
고압산소기가 한대 밖에 없어서.....>
딸 하나는 백혈병으로 고생하고 있고 하나인 아들은 왠일인지 결혼도 못하고
있고 딸 하나는 호주에 건너간지 20 년이 넘었지만 아직껏 나오지 않고
있는 정금 누나..
-어떻게 딸이 그렇답니까?
부모가 보고 싶지도 않대요?
그러다가 돌아가시면 어쩌려고...
-글쎄 말이다
자식도 길러놓으면 다 그렇게 되더라
다 필요없이...
어떻게 부모곁을 떠나 외국에서 20 여년간 한번 나오질 않은건가?
그게 어디 자식일까?
노년이 편치 않은 정금누가
그 속 마음을 누가 알아주겟느가?
이런 술자리엔 늘 빠지지 않던 성북동 매형
요즘은 잘 나오시질 않는다
것도 늙어가고 있단 증거리라..
은좌극장도, 민복이가 살던 영진 양복점도 그대로다
와이프와 선을 봤던 < 오시오 다방 >
그 건물은 그대론데 엉뚱한 점포가 들어섰다
이젠 100 번지 일대는 개 건축이 시작되고 있나 보다
곧 바로 시행할거 같던것이 무려 30 년이 걸렸다.
대현이가 집까지 바래다 줄때 까지 난 추억의 거리를 생각하면서
왔다.
그 머언 추억의 거리를........
바로 손을 뻗으면 닿을거 같은 가까운 곳인데도 세월은 이미
그렇게 많이도 흘러갔다.
<한샘 양복점 >의 핸섬했던 고 재춘 씨는 지금 어디서 살고 있을까?
한번쯤 보고 싶다.
하두 오래동안 못본 얼굴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