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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산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
아무리 생각해도 퍽 낯이 익은 얼굴.
-어디서 봤을까?
군대?
공직생활중?
아님 서대문 살때 주민?
산을 몇 바퀴 돌면서도 가닥이 잡히질 않는다
-어디서 봤을까?
분명 얼굴이 낯이 익는데??
-저 선생님,
공직에 계시지 않았어요?
퍽 낯이 익어 뵈서 말입니다.
-그랬어요.
전 교정직인데?
-저도 서울 구치소 근무했어요.
-저는 영등포 근무했는데??
-그 전은요?
-수원서도, 순천에서도 있었어요.
-아~~!!!
순천요?
그랬었다.
난 눈썰미가 있는 편이라 오랜 세월이 흘러도
예전의 사람의 인상을 금방 기억하는 편이다
함께 같은 교도소 직원으로 근무했음서도 그는
전혀 날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난,
너무도 뚜렷한데??
하긴,
그때 난 신참였고 그는 고참축에 끼어 우리 같은 존재 눈에도
띄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 당시의 직원이름을 대자 그때야 입이 벌어지는 그 사람.
< 김 기태 >
우린 벤취에 앉아 그 시절의 애기로 한참을 애길했다.
1970년대인 30 년전의 애기
4년전에 정년퇴직을 영등포에서 했단다
그 직업으로 그 수 많은 파도를 견디고 정년까지 마쳤단 것은
그 만큼 성실하단 애기다.
요령을 부리던가 다른 부수입을 생각하고 엉뚱한 짓을 한 사람들은
사정한파때 다 잘려 나갔었다.
그 뒤로 숙박업을 경영해 봤고 수입이 여의치 않아 때려 치웠단다.
까마득한 옛날 순천생활.
그리고 맑은 물이 흐르던 선평리 앞 시냇가..
가을이면 누런 벼들이 출렁이는 논두렁 길을 따라 산 아래 있던 청사..
-정말로 서울로 갈래?
하심서 서운해 하시던 아버지..
아무래도 서울로 간다면 고향을 자주 찾지 못할거란 예감에
섭섭하신 표정이 역력하신 모습.
그런 아버지를 뒤로하고 서울로 올라왔을때의 마음
결코 홀가분한 마음은 아니었다.
-담에 소주한잔 해요, 선배님?
-그래, 그래....
의문이 풀려 쉬원하기도 했지만 또 다시 순천을 회상하는
시간은 안타깝기만 했다.
나와의 인연을 만들기 위해 아는 사람을 사이에 끼워 선을 보게 했던
<정임>이는 어디서 잘 살고 있을까?
그녀집에 큼직한 <전축>이 그렇게 부러워 보였는데............
참 좋은 시절의 애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