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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은 들어도 ,
남을 돕는단 것이 보람된 것이고 일종의 서비스라
생각하면 뿌듯하기도 한 업무에 비중있는 사무라 특별
한 배려니 열심히 해 알았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처음,
남가좌 2 동으로 발령받아 갔을때, 나이든 동장님의
첫 말씀였다.
신흥주택지라 설까.
왜 그리도 영세민이 많았던지..
겨울은, 차분하게 사무실에서 일을 볼수조차 없었다.
개천변의 뚝방에 쭉 쳐진 움막들.
거긴,매일 매일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있기에 간밤에 어떤 사고(동사, 아사등등의 사고)
가 났을지도 몰라 순찰을 해야 했기에........
-그래도 그 시절이 더 살기 좋았던 시절일까.
아님, 그래도 인정이 살아있어설까.........
겨울동안,
노숙자들이 얼어죽지 않고 견딜수 있는 보호시설.
잠은 무료에다, 저녁은 라면을 끓여먹을수 있는
아담한 천막을 운영했었다.
그 업무가 바로 내가 맡은 업무.
물론 밤을 지새우고, 그 시설을 관리하는 전담요원을 별도로
채용해서 겨울을 무사히 넘기게 운영했었다.
잠만 자고 낮은 그들나름대로 돈 벌이 나갔다가 밤이 되면
찾아오곤했지.
낮은 힘들어도 밤은 포근히 잠을 잘수 있는 거처가 있었으니
요즘의 한데서 잠을 자야 하는 노숙자들에 비하면 그래도
행복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그 노숙자시설의 운영은 대 부분이 주민들의 이웃돕기 성금
으로 충당했던거 같다.
상부에서 연탄난로에 드는 연료비 정도 지원했나...??
가끔 낮에 순찰돌면 일단의 노숙자들이 라면을 끓여먹음서
함께 먹었던때도 있었지.
관의 배려에 고마워 했고, 그 시설을 서로가 깨끗히 이용해서
운영엔 애로가 별로 없었다.
가뭄에 콩 나듯.........
어떤 술 취한 노숙자가 찾아와 주정을 부린것도 있긴 했지만..
대 부분의 사람들속에서 배겨나지 못하곤 수그러 들었다.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지원했던 사람들..
-배품에 고마워했던 수혜자들.
가잔자와 못 가진자의 대립각이 아닌 정으로 주고 받은
훈훈한 마음으로 겨울을 살았었다.
순수하고, 고와서 일하기도 보람이 있었다.
-지난 일들이라 미화되어 그런걸까?
비록 풍부하지 못했어도, 인정이 살아숨쉬던 70 년대.
이웃이 감시와 경계의 대상이 아닌 친근한 인간관계.
그런 포근한 인정이 살아있던 시절이 새삼 그립다.
내가 살아온 70 년대의 서울은 훈훈했다.
꽃 보다 아름다운 인정들이 남아있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