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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 들이 짓 밟아 오던 날을..
해 마다 우린 이 날을 기념식과 함께 이런 노래를 불렀다.
그때 마다 조국의 자유를 위해 이름모를 골짜기에서 산화한
호국 영령들의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눈물도 흘렸다.
얼마나 슬프게 들려오던가?
6.25 노래가.......
요즘은,
신문도, 뉴스도 별로 조명해 주지 않은 6.25 ..
그때 그 전투로 인해 아직도 고통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수 많은 전상자들.
그 분들의 고마움을 잊어선 안될거다.
제 몸을 아까워 하지 않고 지켜준 조국.
그 분들 땜에 오늘의 자유를 구가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그 전쟁을 망각해서 될것인가.
호시탐탄 적화통일을 염원하던 김 일성.
허지만, 우린 이북의 김일성 정도야 별것 아니란 안이한
생각에 평화무드에만 젖어 있었으니 설마가 사람잡은 격였다.
전쟁 준비를 차근 차근한 김일성과 입으로만 평화를 노래했던
당시의 이승만과 위정자들.
당연한 업보가 아니었을까?
평화란 힘이 앞서야 가능한 것이라서..
6.25 전쟁을 생생히 기억은 못한다.
다만, 책으로 봐서 조금 추측할 뿐.....
단 3 일만에, 수도 서울이 적의 수중에 떨어지고,
-용맹한 국군이 북괴도당을 격퇴하고 있단 뉴스였지만,
그 용맹한 국군들은 어디로 다 갔단 것인가?
서울은 말소리도 낯 설은 북괴군이 점령하고 있었으니..
미처 피난도 못 가고 서울에 갖힌 시민들.
이미 한강 철교는 끊어지고, 오도 가도 못한 서울 시민들.
위정자들은,
서울 시민을 철저히 우롱하곤 자기들만 피난길을 떠난 것였다.
그리고 적치 3 개월.
중앙청엔, 인공기가 나부끼고 있었으니...
<인민 공화국 시대> 가 도래한듯 했었지.
완전 무장한 북괴와,무기가 모자라 애당초 상대가 되지 못한
우리 아군들.
적의 탱크 앞에 맨손으로 맞서야 했던 처절한 아픔.
이찌 잊혀지겠는가?
중서부 전선의 배티 고지의 영웅,김 만술 소위.
단 1 개 소대의 병력으로 인해 전술로 나오는 중공군 2 대대와
싸워 314 명 사살,450 여명 부상을 입힌 그 영웅담.
감동의 스토리요, 한국 전사에 빛나는 혁혁한 공을 세운 승리담이 아닐수 없었다.
조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을때 제 목숨 아까워 하지
않고서 이런 눈부신 전과를 올린 분들 땜에 오늘이 있는거
아닐까?
요즘의 신 세대들.
과연 6.25 의 전쟁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을까.
1950 년의 오늘,
한 반도는 지구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동족상잔이란 전쟁이
발발한 날이었다.
피를 나눈 형제가 총 뿌리를 겨누고, 피를 뿌려야 했던
이런 비극.
다시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연출되어선 안되는 거다.
전쟁으로 인한 그 후유증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우린 지금도 똑똑히 느끼고 있지 않은가?
50 여년을 한 나라에 살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우리의 이산가족.
이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수 있으랴?
새들이 오고가는 이 나라를 형제가 오고 갈수 없다는 것.
분명 비극이 아니고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