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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62 일째

활렵수림


  
< 함 명춘 >

1.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한 세기를 줄이고 깎으며 살아온 잡목들
빽빽이 들어차고 간간이
바람이 긴 머릿자락을 휘날리면
ㅈㅊㅋ 격음화현상이 일어나는 활엽수림
저녁은 관습처럼 무섭게
산허리를 들이받으며 내 행동반경권 안으로
진입해 들어오고 바로
코앞에서 길 하나가 논두렁에
처박히고 한 떼의 곤충들이 증발한다
문득 어디선가 맵고 차고
단단하게 들려 오는 어둠의 호각 소리
불규칙하게 연소해 들어가는
꿈속처럼 깊은 바다,
활렵수림이여
먼 순례의 길에 오르는가
퇴색한 나의 멜라닌 색소에 푸른 물을
들이고 싶다
 
 
2.
 
잠들지 못하는 바다 그 어디에서
삭정가지처럼 걸린 수평선이 부러져
내릴 것만 같다
빛바랜 꽃잎 혹은
빈 술병으로 나뒹구는 어둠 속에서
꾸겨진 나를 발견한다
나를 조소하듯 어두운 곳에서 촉망받는 별들
얼마쯤 걸어왔을까 뒤돌아보면
급격하게 커지는 바람의 폐활량
숨이 가쁘다 가면 갈수록
뒤로 물러서는 활렵수림이여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등줄기가 몹시
가렵다 긁기 위하여 손을 갖다 대면
새까맣게 타들어 오는 밤 12시
아직도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들이
돌아오지 않는 활렵수림으로 남아
희미한 고요의 불빛을 지키는 밤은
저울추처럼 좀더 엄숙한 곳으로
기울어진다.


* 1991 년도 서울 신문 신춘문예 당선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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