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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6 일째

고수 부지

 

 

** 유현숙 **       



내 몸은 저장물을 다 비워낸 고수부지이다


큰 물이 날 때에나 강은 내 어깨를 잠시 빌리며


저 혼자 하루도 도도히 흘러간다


물이 빠져나간 그 자리엔 밀려 온 세월 하나가


상흔처럼 뒹굴고 있다


급하게 달려 온 저 물길은 이제


강의 하류 어디쯤에서 노곤한 몸 풀고 싶은 것일까


제 몸에서 흘려 놓은 것들 미처 쓸어담지 못하고


서둘러 떠난다


내 전신을 훑고 지나간 물길은 저기 어디


산하를 지나가다 그리운 안부 하나쯤 부쳐 줄런지


때로 급류에 떠밀린 적이 있었다해도


한때 신세졌던 내 어깨 한 켠능 잊지 말기를


욕심내 보는이 청맹과니 같은


그대가 빌려 쓴건 어깨 뿐이라는데


나는 왜 가뭄에 배 터진 논배미처럼


쩍쩍 갈라진 전신을 앓고 있는가

 

< 2002 년도 동양 일보 신춘 문예 당선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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