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2 일째
백범 기념관
-누가 나에게 너의 소원이 뭐냐고 묻는다면난 이렇게 대답하겠다.첫째도 ,두째도 , 그리고 셋째도 대한의 독립이라고........백범 김 구 선생의 소원이란다.우리의 위대한 선각자요 , 독립운동가인 백범 김 구 선생.그 기념관이 용산구 효창공원에 건립하여 2 년만에개관한단 보도는 반가운 소식.- 국민 성금 20 억원,정부 지원 160 억원을 투입하여 180 억원 소요된 공사비.- 5552 평 부지, 2929 평의 연 건평.지하 1 층에 지상 2 층 규모.- 백범 유품등 500 여점의 관련 자료.- 백범 일지 원본.- 1949 년 서거시 입었던 피 묻은 옷.- 남북 연석회의를 주창하기 위한 김 두봉에게 보낸 서신.김구 선생이 누군가?국내의 친일파 들이 득시글 거리던때에 광풍이 몰아치는이국의 낯선 땅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불철 주야 고뇌하고애국의사들에게 지시하여 일본의 간담을 서늘게 했던 거사들.해방후엔 귀국하고 보니 엉뚱한 자들이 반토막 나라를세우고 영구 분단을 꿈꾼것을 비탄한 나머지 자신의 목숨을걸고서 38 선을 넘어 북한으로 가서 김일성과 담판하러 가신그런 장한 기개. 그때 남한 사회의 분위기는 김 일성에게 이용만 당한다고 다들반대 했었다.허나, 선생이 왜 그걸 모를리 있겠는가?비록 김일성과의 어떤 타협이 되지 않는다 해도 그는 북으로 갔었다.절대로 , 절대로 분단국가 건립은 안된단 신념으로........통일을 원하지 않던 자의 사주를 받은 포병소위 안두희의 손에비통하게 가신 선생.해방후의 혼란한 정국.마지막 등불였던 김 구 선생의 서거.온 국민은 비통해 했었다.선생을 시해한 안 두희.그는 평생을 숨어 지냈고 , 결국은 애국자의 손에의해 처단되고 말았었다.제 목숨대로 살지도 못하고 비운의 일생의 산 안 두희...그는,나무 토막 처럼 허름한 물체 처럼 그렇게 맥없이 쓰러져 갔다.서거 53 년.이제야 세워진 기념관.이제 세워진 것이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우리 후손들은 이 기념관을 찾아 애국의 길이 어떠한 것인가를 몸소 체험하고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해도 좋을거 같다.기회 봐서 찾아 보고 선열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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