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기면 또 만들면 되죠 이게 세상사 입니다 :
7 일째
명재상 황희
< 퍼 온글 > 메마르고 혼탁한 세상 앞에 고려 말엽에 태어나 조선 건국 초기에 문민 정치의 기틀을 다지고 세종 임금을 보좌하여 태평성대를 꽃피운 청백리 황희. 그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여 살고자 했기에 사소한 일 따위에는 구애받지 않고, 웬만한 남의 흉허물은 입에 올리지도 않는 대범한 성품과 넓은 도량을 갖춘 큰 인격자였다. 재미와 교훈을 주는 무수한 일화로 널리 알려져 있는 방촌 황희의 모습을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볼까 한다. 방촌 황희(黃喜: 1363 - 1452)는 고려 공민왕 12년, 송경 가조리에서 부친 황군서와 부인 양씨 사이에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수로(壽老)인데 뒤에 희(喜)로 고쳤다. 자는 구부(懼夫), 호는 방촌으로 시호는 익성공(翼成公)이다. 조선조에서 태조, 정종, 태종, 세종의 4대의 왕을 모신 황희는 90평생에 70여 년을 관직 생활로 일관하였다. 3정승만 24년 간 지냈으며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하는 최고의 자리인 영의정만 약 19년 간 재직하였다. 그의 3남 수신(守身)도 뒷날 영의정에 올라 영예로운 아버지의 본을 따랐다.고려가 마지막 임금 공양왕으로 망하고, ‘조선’이라는 새 왕조가 세워지자 고려의 신하들은 새 임금 밑에서 벼슬을 하는 사람들과, 새 나라의 임금을 섬길 수는 없다며 벼슬을 내놓은 사람들로 나뉘었는데, 벼슬을 내놓은 사람들 가운데 72명의 고려 신하들은 송악산에 있는 두문동으로 들어갔다. 서른 두 살의 황희도 그 가운데 있었는데 고려의 마지막 충신들은 그곳에서 풀뿌리와 나무 껍질로 목숨을 이어 갔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많은 인재들이 필요하였다. 그는 고려의 많은 인재들을 모으려 했으나 이에 응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어명이오! 황희 선비에게 내리는 주상 전하의 서찰이오.” 새로운 왕조를 연 태조가 보낸 편지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조선은 그대와 같은 유능한 인재를 필요로 하나니 황희는 관직으로 돌아와 나를 도우라.”“내 지난날 고려 조정에서 벼슬을 하고 녹을 받아 먹은 신하로 어찌 새 임금을 모실 수 있단 말인가!” 편지를 받은 고려의 신하들은 밤을 새워 의논했다. 두문동 선비들은 혼란 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으나 좀처럼 그 마음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깊은 고뇌 속에 있던 한 노선비가 “우리 중의 누군가가 새 왕조를 도와 주어야 할 것 같소. 비록 임금은 바뀌었지만, 백성들은 전에 우리를 믿고 따르던 바로 그들이 아니오. 선량한 백성들을 생각해서 누군가 새 조정에 나아가야 하겠소.” 그들은 머리를 끄덕이며 수긍하였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이미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들이니 젊고 학문이 뛰어난 황희가 적당할 듯하오.” “옳소이다. 황희는 인품이 뛰어나니 백성들을 위해 어진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오.” 극구 거절하던 황희는 하는 수 없이 백성들을 위하여 뜻을 돌이킬 수밖에 없었다.“어차피 나라의 주인은 백성, 몸은 조정에 있으되 마음만은 항상 백성을 생각하리로다.” 이렇게 마음을 고쳐 먹은 황희는 태조의 명령을 받아들여 다시 벼슬길에 들어섰다. 황희가 평생을 청렴결백하게 살아간 데에는 젊은 시절의 뼈저린 경험 하나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어느 날 시골길을 가던 황희는 나무 그늘 아래서 잠시 쉬고 있었다. 그런데 저만큼 떨어진 곳에서 누렁 소와 검정 소를 번갈아 부리며 밭을 가는 농부의 모습이 보였다. 심심하던 터라 지나가는 소리로 농부를 향해 한마디 물었다. “여보시오. 그 두 마리 중에서 어느 놈이 더 일을 잘하오?”그런데 갑자기 농부가 일손을 멈추더니 황희에게로 가까이 와서는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저기 저 누렁 소는 일도 잘하고 말도 잘 듣지만, 저쪽 검정 소는 일도 잘 안 하고 꾀만 부리면서 말도 잘 안 듣는다우.” 황희는 이 말을 듣고 웃으며 말하였다.“여보시오. 그런 걸 가르쳐 주는 데 여기까지 와서 귓속말로 할 것까지는 뭐가 있소? 그냥 거기서 이야기해도 잘 들릴 텐데.” 그러자 농부가 정색을 하며 말하였다. “허어, 모르시는 말씀.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제 잘못을 이야기하는데 좋아할 리가 있겠소? 그건 선비가 아직 젊어서 모르시는 말씀 같소이다.” 황희가 귀양가서 세운 남원의 광한루. 본래 이름은 광통루였다. 황희는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였다. 짐승조차도 저러한데 하물며 사람이야.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친 황희는 이후로 생각하고 행동함에 있어 더욱 과묵하고 침착하며 신중하게 처신하였다. 비록 한 순간의 이상한 체험으로 돌리고 잊어도 좋을 일이었지만 그것을 평생의 교훈으로 삼고 실천하였으니 오늘에 전하여지는 황희의 모습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어질고 곧은 성품의 황희는 늘 바른 정치를 위해 힘썼다. 황희는 임금이라 할지라도 서슴지 않고 옳은 말을 아뢰었다. “전하, 왕비 친척들의 횡포가 심하옵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장차 큰일이 생길 터이니 엄히 다스려 주시기 바라옵니다. 또한, 왕비마마의 기강도 바로잡으셔야 할 줄 아뢰옵니다.” 감히 임금에게 엄두도 내지 못할 말을 황희가 거침없이 아뢰자 주위 신하들은 왕의 노여움을 사게 되지 않을까 염려했다. “왕비마마까지 들먹이다니, 저자가 완전히 돌았구먼 그래.” 하지만 태종 임금은 진정 나라를 위하는 황희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오히려 고마워하였다. “정말 고맙소. 그대와 같이 곧은 신하가 있어 듬직하오. 조선이 올바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언제나 내 곁에서 도움을 주시오.”황희는 한때 태종 임금의 첫째 아들인 양녕 대군을 폐하는 운동에 반대하다가 그를 시기하는 자들에 의해 귀양살이를 하기도 했고, 또한 여러 번 관직을 내놓고 낙향하기도 했다. 세종대왕은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황희를 다시 불러 들여 중책을 맡기었다. 이제 세종을 모시며 황희는 영의정으로서의 진가를 발휘하여 태평성대를 이루었다.하루는 세종대왕이 황희의 집을 찾았는데, “허허 이렇게 낡은 집이 ...” 방안을 둘러보던 세종은 보료 대신 거적이 깔려 있는 바닥을 보고서,“이 자리는 거칠기 짝이 없어 보이니 등이 가려울 때 누우면 더없이 좋겠구려.” 하자 황희는 얼른 “그러하옵니다, 상감마마.” 하고 답한다.“한 나라의 영의정이면 비단 방석도 부족하거늘 저 누덕누덕 기운 이불은 무엇인가? 영상, 나라에서 비용을 내리도록 할 것이니 당장 집과 세간살이를 장만토록 하시오.” 뜻밖에 낡은 집을 방문한 세종대왕이 말하였다. 임금의 따뜻한 보살핌이었지만 황희 정승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전하, 아니 될 말씀이옵니다. 나라의 녹을 먹는 선비로서 옷과 비바람을 피할 집을 갖추면 그만입니다.”황희 정승은 이렇게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가난한 생활을 하며 늘 남들을 먼저 생각했다. 18년 동안이나 정승의 자리에 있으면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훌륭한 일을 남기신 황희 정승은 오늘날의 모든 관리들이 본받아야 할 청렴과 지혜의 진정한 명재상의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한번은 이석형이 상의할 것이 있어 찾아왔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 하자, 황희가 “자네는 글씨를 잘 쓰니,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게.” 그는 『자치통감강목』이라는 책을 내놓으며 “이 책의 제목을 써 주지 않겠나?”“대감 마님, 명을 거두십시오. 저의 볼품없는 글씨로 어찌 이 귀한 책을 더럽힐 수 있겠습니까?”“겸손이 지나친 듯 싶네. 마다하지 말고 써 주시게. 자네 같은 사람이 제목을 쓰면 이 책이 더욱 가치 있어질 거야.” 황희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부탁하자, 이석형은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붓을 잡았다. “그럼, 부끄럽지만 정성을 다해 써 보겠습니다.” 글씨를 다 쓰자. “훌륭한 글씨를 써 주었으니, 내 다과를 대접하겠네.”그때였다.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개구쟁이들 서넛이 뛰어들어왔다. “야, 맛있겠다! 할아버지, 이거 먹어도 되지요?” “오냐, 오냐!” 황희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이들은 상 앞으로 다가와 음식을 마구 집어 먹는다. 그중 한 아이는 아예 황희의 무릎에 올라앉아 수염을 잡아당기기도 한다. 그 광경을 보며 이석형은 속으로, ‘성품이 대쪽 같은 어른께서도 손자들은 몹시 귀여워하시는구나!’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행색이 너무 초라했던 것이다. 황희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대감 마님, 저 아이들은 어느 집의 ...?” “우리 집 하인의 아이들일세. 다들 무척 귀엽지?” “아, 네 ....” 이석형은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하인의 아이들이 주제넘게 대감 마님께 ....” “놀랄 것 없네. 하인의 아이든 양반의 아이든 모두 똑같은 사람의 자식이 아닌가?” “하지만 하인과 주인은 신분이 뚜렷이 다르지 않습니까?” “신분이 대체 무엇인가?” “신분의 다름이 있기 때문에 세상의 질서가 바로잡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양반들이 만들어 낸 말일 뿐일세. 하인들도 양반과 마찬가지로 하늘이 낸 사람들일세. 나는 저 아이들을 내 손자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네.” 그의 말에 이석형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대감의 깊은 뜻을 알고 나니 제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생각이 모자라는 저에게 이처럼 귀한 가르침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석형은 황희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는 그 뒤로 더욱 황희를 존경하게 되었고, ‘하인도 양반과 마찬가지로 하늘이 낸 사람이다.’라는 황희의 말을 되새기며 훌륭한 인물이 되었다.황희의 슬하에 4형제 중 두 아들이 그의 생전에 이미 과거에 급제하여 의젓한 벼슬길에 올라 있었다. 두 아들 형제가 문 밖에 있는데 갑자기 눈보라가 쏟아져 지척을 통행할 수 없었다. 두 아들 정승이 안채로 들어가려는데 형님 정승이 “아우가 형님인 날 업고 가소.” 하고 말하자 아우 정승이 “그러지요.” 하고 선뜻 업었다. 동생이 형을 업고 안채로 들어서는데 아버지인 황희 정승이 안채에서 보고 있다가 장난스레 “이런 때 아우가 형을 메치면 탈인데 ….” 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아우가 형을 눈 속에 처박아 관복과 건이 다 버리게 되었다. 이 모습을 보던 황희 정승이 빙그레 웃었다. 아버지가 환히 웃는 모습을 보자 두 아들은 서로 마주보며 “오늘에야 아버님께서 웃으시는 것을 뵈니 참으로 행복하다.” 하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형제의 부모 사랑이 느껴지는 대목이다.황희가 세상을 떠났을 때 신숙주는 말하기를, “위로는 부모 섬기기를 효로써 하고, 아랫사람을 만나서는 지성으로 하였다. 그의 장례일에는 사람들이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위로는 조정의 모든 선비로부터 아래로는 아이들과 부녀, 노복에 이르기까지 급히 달려와 애석해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옛 사람의 유애(遺愛)가 한 귀퉁이 한 읍에 미치는 예는 있었지만 그와 같이 한 나라가 허둥지둥하며 연모한 예는 천고에 드물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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