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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62 일째

6.29 선언

- 오늘은 기쁜 날, 차 값은 무료 입니다.이런 신선한 충격의 보도를 들었었다.6.29 선언이란,1987 년 오늘,당시 민정당 대표였던 노 태우 씨의 시국 선언이다.차기 대통령 후보로 선정된 노 태우 씨는 8 개항을 선언한 것.- 여야 합의에 의해 조속히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하고,김 대중씨를 사면 복권하고 시국 사범을 석방한다.주요 골자다.노태우 씨는,그 후에 6.29 선언이 마치 자신의 창작품인것 처럼 말을 하였지만,그 내부를 들여다 보면 그 6.29 선언은 끈질긴 국민의 요구를 들어준항복선언이 맞다.1987년 4 월 13 일 전두환 씨는 호헌 조치 이후 민주화 투쟁은 극에달하고 있었고, 3 일전인,6 월 26 일은 6월 항쟁중 최대규모의 시위가 있었다.이걸 바라본 노 태우 민정당 대표는,마음이 착잡했으리라.이런 상황으로 가선 도저히 연말의 대통령이 된다 해도 정통성을 얻지못할거고,그럴 바엔, 더 상황이 심해지기 전에 민심의 반전이 필요했을거다..전두환 대통령으론,김 대중씨의 존재는 눈에 가시였을거고 ,사면 복권이 되지 않은 상태로 외유중이었다.그러나,민심은 그게 아니었다.전 두환 식의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그런 유신헌법의 아류를 답습하고 싶지 않았다.- 직선제와 김 대중씨의 사면 복권.그건, 당시의 국민의 한결 같은 요구 사항였다.멀쩡한 사람을 사형언도 해 놓고 경쟁자를 묶어 놓고 직선제를받아 들인들 그건 진정한 민주회복은 아닌것....위기감을 느낀 노태우와 전두환 대통령.그들은,국민의 한결같은 요구를 외면할땐 어떤 부 작용이 있을거란 것은너무도 잘 알고 있었을 거다.드디어 군부가 국민의 항쟁에 두 손을 든것이 6.29 선언이다.그건,수용하지 않을수 없은 긴박한 상황였다.그래서 어느 찻집에선 위와 같은 신선한 충격을 주는 안내문을 붙이고손님에게 차를 무료로 대접하여, 민주주의가 가까이 다가 왔음을 행동으로 보였다.그런 직선제가 수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구 김씨는 동상이몽으로 손짚고 헤엄치는 쉬는 게임을 노 태우에게 넘겨 주어 5 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형 먼저 아우 먼저 했더라면,두 김씨는 우리의 민주화의 버팀목으로 아름다운 선례를 남겼을 텐데..힘을 합치지 못한 곳에는 ,질수 밖에 없다는 뼈 아픈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이런 교훈을 정치인들은 마음깊이 새겨야 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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