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0 일째
첫 탈출의 꿈을 안고...
1966 년 3 월 11 일 오늘 아침 4 시 30 분.첫 탈출을 꿈꾸며 영등포역에 내린 난 환희에 부풀었다.옆엔 개나리 봇짐을 매고서.....그때의 모습이 어땠을가?- 내리자 마자 인천가는 버스를 타서 신앙촌에서 내려라.글고 곧장 들어오면 안내사무실이 나오고 거기서 물어..시디 11 동 6 호라고...전날 연락했을때 오는 방법을 제시하여 주던 이모할머니....벌써 36 년전의 일.왜 해마다 되돌아오는 그 날이 잊혀지지 않고 각인되어 있는가?내가 20 살이 되던 해를...지방에서 고등학교 나온 난,어쩐지 그런 촌에서 썩는단 것이 어쩐지 억울했다.아니 부모님처럼, 인근에 친척들 처럼 내일의 희망조차도 보이지 않은 그런 시골의 궁색한 생활이 어쩐지 싫었다.- 어딘가로 탈출하자.그게 당시의 나의 절대명제(?)였지.일을 해도 시큰둥하고, 비실 비실한 생활..그 희망이 보이지 않은 곳에서 일이 즐거울리 없었지.- 그저 맨손으로 와서 얼마든지 취직도 하고 공부도 할수있고...신앙속에서 사는 곳이 바로 신앙촌이란다.다들 가까운 친척들을 신앙촌으로 데려오고 전도하는데 난 어쩔가 몰겄다.너라도 오너라.엉뚱한 곳을 기웃 거리지 말고.......이모 할머니의 이 말씀은 늘 탈출을 호시탐탐 노리던(?)내겐,복음 같은 애기였지.- 그래 , 일단은 탈출하자.부모님이 반대해도 일단은 가서 부딪쳐 보는 거야..늘 어물 어물 하다간 난 여기서 영영 머물수도 있어...첨엔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지만,그건 이미 내가 공작한 것이 주효하여( 이모할머니를 앞세운 공작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지.....부모님의 품을 떠나 처음으로 외출하는 거기.완행열차를 타고 장장 12 시간을 지루한 차를 타고 내린 영등포역..희뿌연 안개가 자욱한 아침이었다.3 월이라곤 해도 쌀쌀한 아침기온은 춥게 느껴졌고.......- 반듯한 도로..- 오만 제단의 휘황한 불빛과 은은히 울려 퍼지던 찬송가....- 부지런한 동작으로 오르던 사람들....- 친절하고,말끔한 복장으로 안내 해 주던 안내원들...- 하얀 색갈이 선명한 깨끗한 집들...그래, 내가 있어야 할곳은 여기다.첫인상이 좋아서 였을가?강렬한 인상으로 이렇게 신앙촌을 찾게 되었다.- 신앙이란 명제보담은 우선 그런 농촌에서 탈출하여 나의 길을찾아야 한단 것이 더 절실한 문제였다.신앙촌,그 이상향은 이렇게 내게 좋은 인상으로 새겨지고 있었다.그 신앙촌 생활의 2 년은, 두고 두고 많은 교훈으로 날 이끌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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