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2 일째
너의 길을 가라고 ( 퍼온글)
잠옷을 입을 채로 현관문을 나와봤다. 휴일이라 그런지 동네에는 노는 아이들조차 없다. 모두들 평일의 여유를 즐기고 있으리라. 아버지는 오늘도 여느때처럼 새벽에 일어나셨나 운동을 가신 듯 했다. 운동 뿐만이 아니라 동네 놀이터 청소도 하고, 길가의 주인없는 쓰레기들을 줍고 계시겠지. 나가실 적에 꼽은 듯한 국기를 바라보았다. 국기가 맥이 하나 없이 홀로 쓸쓸하게 우리 집의 현관 옆에 있었다. 아버지의 언제나 쓸쓸해 보이는 뒷모습처럼. 가족. 나의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공기와 같이 늘 나의 옆에 있어 살아갈 이유를 부여해 주는 그들이다. 당료로 감각마저 소실해가는 아버지의 팔과 다리에서, 늘 잠이 들면 뭔가 고달픈 꿈을 꾸는 듯한 엄마의 표정에서, 항상 좋은 것만 입히고 싶어해 무거워진 오빠의 어깨에서, 새로운 만남, 거기서 또 다가오는 좌절을 겪고도 아직 소녀 같기만 한 언니의 웃음에서, 새 둥지처럼 어린 조카를 품고 있어 그림 같기만 한 새언니와 조카의 모습에서, 힘을 내고 앞을 바라볼 이유를 찾는다. 어딘가 함께 가지 않겠냐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정중하게 거절할 이유를 찾아내느라 열심히 머리를 회전시켰다. 전화를 끊고 눈에 들어오지 않는 컴퓨터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의 시간이, 행동이, 생각이 멈추어 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숨이 멈추지는 않았다. 오히려 심장이 가빠왔다. 나에게는 쓸 시간이, 할 행동이, 바꿀 생각이 너무나도 많은데...... 산책을 한다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다. 특히 봄기운을 맞으며 길을 걷는 것은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오늘의 산책은 걷는 것이 아닌 그저 무의식적으로 걸어지는 것이었다. 자동적으로 어딘가 혼자 가야한다는. 한참을 걷다가 릉 입구에 잠시 머물러 아이들이 공놀이 하는 것을 보았다. 엄마 연배의 아주머니가 트레이닝복을 입고 릉 주위를 몇바퀴인지도 모르게 반복적으로 뛰고 있었다. 날씨가 푹한데도 두꺼운 점퍼를 입은 아저씨 몇이 무언가 입씨름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어느 집에선가 김치찌개를 끊이는 냄새가 났다. 그 냄새가......가을, 낙엽 태우는 냄새보다 더욱 나의 감상벽을 충동했다. 집으로 돌아가야겠어. 집에 돌아가야겠어. 나의 가족들이 모여 갓 구운 듯 빵에 생크림을 얹어 먹고 있었다. 두살 난 조카는 생크림을 입안 가득 물고 세상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로 나에게 '엄마'라고 하며 안겼다. 누가 빵을 하나 건네는데 그게 누군지 물기에 흐릿에 져서, 빵은 별론데....쉰소리를 하며 빵을 손에 들고 바로 내 방으로 왔다. 마음은 텅 비어 있었는데, 집은 꽉 차 있었다. 다행히도. 다시금 오후에 맡은 김치찌개 냄새가 나의 감각을 천천히 자극한다. 그 시큼한 향이 나에게 어서 너의 길을 가라고 재촉한다. 살아갈 이유를 준다. 공모마감이 며칠 남지 않았다. _ poem92 님의 일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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