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5 일째
어떻게 살아야 할가?
사람들은 그렇다늘 준비하면서 산단 것이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다.그건 알면서도 실천이 안되는 것은 세상이치가 그렇게 마음같이 편안한 것이 아닌탓이다.나도 그렇긴 하지만...년말 정산을 위해서 소득공제내역의 영수증이니 하는 걸 미리 미리 준비하면 될텐데 어떤 서류를 준비하라 하면 그때야 난리다.여기도 마찬가지다연말의 정산에 따른 서류떼러 오는 손님으로 북적대는 것이 시장바닥 같다.늘 한가한 토요일이 오늘은 아니다.아마도 오후에도 이런 행렬은 지속이 될거다.평소에 둘이서 하던 업무가 셋이 달라 붙어서 해도 처리가 지연되곤 한다그 호적 등본은 몇시간 이면 뗄수 있었던 것이 요즘은 꼬박 하루가 걸리니 그 늦은 것을 말하면 뭣을 할건가?미리 미리 호적 같은 것은 뗐으면 될것이 아닌가?산단것도 그렇지 않을가?자기의 죽음을 미리 안다면 미리 미리 차곡 차곡준비하면서 살텐데..1980 년대에 신군부가 위세를 떨치던 시절에 동아일보의 편집국장의 신분에 있던 송 건호 씨..132 명이란 그 동아일보 신문기자와 피디가 해고 된것에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고 물러난 송 건호씨...그는 그 이후에도 미운털이 박혀서 아무런 죄없이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파킨슨 병을 얻어서 거동도 못하고 있다가 타계했단 소식..그가 참 언론인으로 산것은 후배의 거울이 되고 있다그는 해직된 뒤에 생활이 곤궁하여, 대학을 보내지도 못하고 고등학교만마친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가?그도 신군부의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적당히 타협헸다면 편안히 살수도있었으리라..헌데도 그는 불의와 담을 쌓고 죽어도 언론인이란 모진 마음으로 정의롭게 살아왔다..그 뒤에 무려 14 번이나 발탁의 권유를 받았지만 그는 참 언론인으로 걷겠다는 의지로 모두 거절한 이 시대의 참 양심이었지...그리고 한겨레 신문 창간...그의 주도로 그렇게 한겨레 신문이 창간되고 그는 그의 초대 사장이 된다 국민의 주식으로 만든 한겨레 신문..역대 정권들이 그렇게 껄끄럽게 생각한 신문...그러다가 그는 그 직도 1994 년도에 후배에게 인도하고 물러났다.바로 언론인이란 어떻게 산단 것을 그는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청암 송 건호..그의 역사의식과 한길을 묵묵히 걷는 그의 자세...어떤 불의앞에도 무릎을 끓지 않는 곳곳한 자세...그런 분이 신군부의 폭압앞에 너무도 고문을받아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타계했단 소식은 가슴이 아프다..- 다시 태어나도 언론인의 길을 가겠다하던 그의 투철한 사명감..그런 그의 투철한 사명감과 그의 기개 앞에 우린 모두 머리를 조아린다75 세라는 다소 아쉬운 연륜으로 저 세상 가신 청암 송 건호......이젠 편안히 쉬소서...우리가 살아가는데 그의 생활과 사고는 어떻게 사는 것이 후세에 보람있는 사람인가 하는것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준것은 참 다운 사람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준 규범이 되고 있다..청암 송 건호 선생님..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우리국민 모두는 어떤 불의앞에서도 굴하지않고 산단 것이 어렵지만, 절대로 굴하지 않고 정론으로 맞서서 살으신 선생님의 생활 철학은 오래 도록 가슴에 새겨져 있을 겁니다..부디 편안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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