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2 日目
사주, 편집인, 주필들이여(퍼온글)
김재홍 최근 미국의 이름 높은 인권단체인 프리덤 하우스는 세계 각국의 언론상황을 여섯 등급으로 나누고 한국을 2등급으로 분류했다. 이를 두고 보수신문들은 우리의 언론자유가 1등급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러면 보수신문이 특혜성장을 누렸던 군사정권 시절 한국 언론의 점수는 어땠을까? 유신말기인 1977년 프리덤 하우스는 당시 세계 145개국의 언론상황을 1등국부터 7등국까지로 분류했고, 한국은 거기서 5등국이었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케냐, 수단 등 군사독재가 지배하는 후진국이나 헝가리, 폴란드, 유고 같은 공산국가와 동점이었다. 레바논, 파키스탄, 이집트, 로디지아 같은 나라들도 4등국으로 한국보다 앞섰다. 한국보다 못한 나라라면 그저 캄보디아, 베트남, 중국, 루마니아, 소련과 북한 정도였다. 세계 최고의 전통을 자랑하는 저널리즘 연구과정인 미국 하버드대의 니만펠로십도 “한국 기자는 자유 언론인이 아니다”라며 받아들이기를 거절했다. 유신선포 이후 87년 말까지 15년 동안 한국 언론은 그런 수모를 겪었다. 그런데 언론자유가 하위권에서 상위권으로 올라선 지금,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고 소리치는 보수신문의 사주와 편집인, 주필들은 그렇게 어두웠던 시절엔 과연 무엇을 했는가. 유신체제나 5·18 내란 상황에서 정의로운 기자와 논설위원들이 언론자유 운동을 벌였을 때 그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당시 자유언론을 실천하려던 기자들을 강제로 해직시킨 사주는 지금의 사주가 아니던가. 동료였던 해직기자들의 복직을 방해하거나 복직기자들을 차별대우한 편집간부들이 편집권을 독점해 오지 않았던가. 탈세 처벌을 모면하고 비호하기 위해 언론자유를 들먹이는 그들이 정녕 종교의 자유를 방패막이로 삼으려는 사교의 교주와 다를 게 무언가. 그런 사주와 주필들 아래서 언론의 양심회복은 가능한 일인가. 프리덤 하우스는 “검열받지 않으며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신문과 방송”을 기준으로 언론상황을 채점했다. 87년 6월 시민항쟁 덕으로 한국의 언론은 외부검열과 권력의 예속에서 벗어났다. 이제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 `밤의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사주와 편집권자가 영구히 교체되지 않는 사회 지배세력이 되고 말았다. 한국의 언론이 아직 1등급에 들지 못한 이유는 사주체제로부터 독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주만 개과천선한다고 해서 언론이 개혁되는가. 사실 한국적 현실에서는 퇴행적 `전제 사주'와 구분되는 양식이 있는 `개명 사주'의 역할을 인정할 필요도 없지 않다. 퇴행적 사주에게 온갖 아첨을 다 떨면서 편집권을 독점적으로 행사해 온 편집인이나 주필이 더 문제인 경우도 있다. 편집권자 1인의 편견과 지역감정이 그대로 신문의 논조로 직결되는 비민주적 언론구조를 혁파해서 편집권을 다원화하지 않고서는 나라의 여론이 바로 서기란 불가능하다. 이번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는 소수의 사주들이 저지른 비행 혐의였지 다수 언론인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다. 정부쪽은 언론의 본질과 전체 언론인의 명예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탈세 사주의 처벌을 언론인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대응한다면 언론인의 명예도 그 사주와 공동운명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론의 양심회복을 촉구하기는커녕 “나도 충성스런 사원이다”면서 언론기업과 사주를 비호하기 위한 구사대로 나선 일부 기자들이 그렇다. 김영삼 정부가 군사정권과 유착했던 정치장교 집단 `하나회'를 숙정할 때도 군 전체를 매도하지 말라는 항변이 있었다. 하나회와 가까이 지내면서 혜택 받았던 장교들이 군 전체를 방패막이로 걸고 넘어지려 한 것이다. 그러나 곧이어 다수의 일반 장교들은 소수 하나회를 분리시킴으로써 군의 명예를 지켜냈다. 지금 일부 언론인의 처신을 보면 의식수준에서 그때의 군 장교들만 못한 것 같아 못내 안타까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김재홍/경기대 교수·남북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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