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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62 일째

선택이 요구되는 시대( 퍼온글 )

만나는 사람마다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싼 이야기들 뿐이다. 워낙 민감하고 큰 이슈인지라 우리 사회의 다른 문제들은 아예 묻혀버린 느낌이다. 사안의 성격상, 얼핏 언론사의 탈세 비리를 강조하다 보면 정부를 편드는 것으로 비치고, 언론 자유 위축을 걱정하면 언론 사주의 탈세를 옹호하는 것처럼 되니 다들 조심스러워한다. 그 중에는 `용감하게' 소신을 밝히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글줄깨나 쓴다는 소위 지식인들로서는 이런 상황이 여간 곤혹스럽지 않은 것같다. 사회 현상에 두눈을 질끈 감아버린다면 몰라도, 흔히 하던 식대로 양비론을 펴기도, `합리'를 가장해 두리뭉실 넘어가기도 만만치 않다. 가면을 쓰고 고담준론을 펴면서 자신의 속내와 `정체'를 숨길 수 있는 공간이 현저히 좁아졌다. 언론인들은 더욱 곤혹스러울 터이다. 소속 신문사의 견해와 자신의 소신이 딱 들어맞으면 다행이지만, 그리 되기가 어디 쉬운가. 솔직히 말해 언론인치고 사주와 특수관계에 있거나 또는 이미 상당한 지위에 올랐거나 오를 것이 `보장'된 극소수를 제외하고, 권력 뿐아니라 사주로부터 독립된 신문, 편집권 독립을 마달 까닭이 있을까. 갈수록 글쓰기 어려워져 그러나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까딱하다간 자신의 목줄을 쥔 사주 눈밖에 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현실만 따르자니 `공인'을 자처하던 자긍심과 이름값을 송두리째 내던지고 `정보산업 샐러리맨'으로 자족해야 할 판이니 이래저래 난감한 처지다. 그래서 더러 자신의 논리를 사주의 것에 일치시켜 고민을 피해가는 사람도 있는 것같다. 그러지 않아도 글쟁이들로선 예전보다 글쓰기가 여간 팍팍해진 게 아니다. 인터넷 `덕분'에 누구라도 클릭 몇 번만 하면 예전에 쓴 내 글이 곧바로 튀어나오니 좀체 말을 바꾸기가 어렵다. 한번 쓴 글이 평생을 따라다니는 세상이다. 말 뒤집기를 밥먹듯 하는 정치인들과 달리 그래도 논리를 따지는 `먹물'들에게는 여러모로 고단한 세월이다. 정치인들이라고 선택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정치적 장래가 걸려 있으니, 현실적 이득을 택할 것이냐 대의를 따를 것이냐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실적 이득이라 해도 길게 볼 때 어느 쪽이 과연 잘 하는 것인지 가늠이 쉽지 않을 터이다. `언론 개혁'이야말로 누가 하더라도 꼭 해야 할 것이지만 막상 나서는 사람은 엄청난 상처를 입게 마련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서 임기도 없이 힘을 휘두르는 언론의 위력과 `폭력성'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세상사에 밝다는 사람들일수록 이런 언론의 위세에 민감하다. 김대중 정권이 이제껏 속앓이를 하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다가 뒤늦게 결단을 내린 것도 아마 가급적 정면 충돌을 피해가고 싶었기 때문일 게다. 현실 정치인으로 신문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 대통령이 그동안 얼마나 재고 또 쟀겠는가. 그런 의미에서의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면 충분히 그럴 것이다. 세상에 정치인이 하는 일이 `지고지순'하거나 정치적 의도가 없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언론사 세무조사가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방향에 부합하느냐, 사심이 앞서는 것이냐의 무게를 놓고 정당성을 따져야 한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어떤 사회가 건강하고 바람직한 사회일 것인가. 그런 사회를 만드는데 언론이 공익적 구실을 다하게 하려면 무엇보다 사주의 전횡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이를 부인하는 논리는 제아무리 미사여구를 늘어놓더라도 핵심을 외면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사주 전횡 막는 게 핵심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정권의 언론장악 음모라며 몇몇 족벌신문 편에 서는 것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정치공학적으로만 본다면 자신을 지지해주던 든든한 버팀목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설사 논리가 옹색하고 여론이 불리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겠지만, 족벌신문들은 고마움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란 계산이 섰음 직하다. 그러나 그 셈법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국가 지도자로서의 첫째 덕목인 국민을 바라보는 `철학'이 없는 것이다. 이 원섭 한겨레 신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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