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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2 일째

한국자본주의(퍼온글)

자본주의. 그 말만큼 우리 사회에서 새퉁스런 것도 드물다. `자본주의'를 입에 올리면 예의 불온한 눈초리가 사납게 뒤따르는 세월이 있었다.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자본가라는 말에 이르면 더욱 그렇다. 치도곤 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 말을 부담없이 효과적으로 써 온 사람들이 있다. 다름아닌 자본가들과 그 대변자들이다. “정부가 자본주의의 근간을 침식하고 있다”는 자유기업원장의 고발, 그리고 뒤이은 언론과 정치권의 움직임은 한국자본주의의 천박한 3각 동맹구조를 단숨에 폭로해주었다. 신자유주의에 맞선 노동자들을 잔인하게 탄압한 김대중 정권이 자본주의 근간을 침식한다면 기실 잠자던 소가 웃을 일이다. 말살에 쇠살일망정 자유기업원장은 그럴 수도 있다. 적어도 그는 자기 배역에 충실하지 않은가. 하지만 자칭 `독자가 선택한 좋은 신문'들이 앞다퉈 용춤을 추는 풍경은 어떤가. 보라. 조선·동아·중앙일보사가 곰비임비 무대에 나온다. 한결같이 근엄한 표정들이다. `할말은 하는 신문'은 사설제목으로 노래한다. “재계도 이제 할 말은 한다.” 과거의 `명성'이 아까운 배우는 읊조린다. “극우논리와 극좌이념은 모두 배격되어야 한다.” 진부한 대사다. 재벌신문에서 벗어났다는 신문은 부르댄다. “기업은 정부의 적이 아니다.” 누가 적이라고 했을까. 궁금하다. 배역에 어긋나서일까. 아무래도 그들의 설레발 연기는 역겹다. 에서 그나마 `건전 보수'처럼 보인 논객마저 익살스러운 희극을 거든다. “금융 교육 의료 언론을 관료적 사회주의 체제로 `개혁'했거나 하려는 중이다.” 상식을 지닌 이들에게 묻고싶다. 과연 금융·교육·의료·언론 가운데 무엇이 `관료적 사회주의 체제'로 개혁되었는가. 혹은 개혁 중인가. `강위석칼럼'은 무람없이 말한다. “5·16을 넘어섰듯이 5·18을 넘어서야 한다.” 옹근 40년 전 오늘 쿠데타를 일으킨 주모자가 여적 권력을 휘두르고 박정희 기념관은 강행되는 현실이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걸까. 마침내 한나라당이 무대에 올랐다. 제대로 시작도 못한 재벌개혁을 그만하라고 외친다. 예의 자율 타령이 이어진다. 재벌·언론·원내1당 기득권세력들이 저들만의 공화국을 선포하겠다는 깜냥일까. 어쩌면 `절정'은 아직 오지 않았는지 모른다. 늘 돌다리만 두들기는 김 대통령이 언제 가세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좌파라면 죄다 극좌로 몰아치는 극우논리는 그들도 주장했듯이 이제 물리쳐야 한다. 만일 자유기업원과 세 신문사의 논리에 따르면 유럽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는 `빨갱이 세상'이다. 영국의 노동당과 독일의 사민당, 프랑스의 사회당을 보라. 세 나라의 집권세력은 서슴없이 사회주의자임을 밝힌다. 이 땅의 극우세력들은 합리적 토론에서 말문이 막힐 때 언제나 대한민국은 자본주의체제라고 부르댔다. 그들에게 이제 물어야 한다. 도대체 어떤 자본주의를 말하는가. 만일 진보적 여론은 싹부터 색깔공세로 짓밟고 노동자들은 입다물고 살라는 자본주의라면 분명히 해두자. 그런 자본주의는 폐기해야 마땅하다. 한국의 자본가들도 이제 정신차릴 때가 되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합리적 대변자를 키워야 한다. 눈앞의 이익에 소락소락 연연하거나 사탕발림에 솔깃한 대가는 자신의 파멸뿐이다. 가령 김우중 둘레에 얼마나 많은 경제학자들과 언론인 그리고 자칭 사회주의자들까지 들꾀며 아부를 일삼았던가. 그 결과는 대우그룹의 해체와 김우중 수배다. 재벌·언론·정치의 3각 천민동맹은 국제통화기금관리체제로 이미 바닥이 드러났다. 낡은 동맹을 복구하려는 `궐기'는 무책임한 철부지의 투정일뿐이다. 역설이지만 자본가들과 자본주의를 성숙시켜 온 것은 세계사적으로 천박한 우파가 아니라 진지한 좌파였다. 한국자본주의의 진정한 위기는 천민 자본과 눈맞춘 언론들이 여론을 농단하는 현실에 있다. 자본주의를 방패로 색깔의 칼을 휘둘러온 그들에게 그들의 방패가 얼마나 자기 파괴적인가를 일러줄 때다. 한국자본주의를 참으로 근간부터 성찰할 때다. 손석춘/ 여론매체부장songil@hani.한겨레 신문칼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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