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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기면 또 만들면 되죠 이게 세상사 입니다 : 7 일째

보복의 격조(퍼온글)

지난주 ‘감시견에 대한 감시자’라는 주제로 글을 썼습니다. 최근 방송사들의 잇따른 신문비평을 표지이야기로 다루면서, 감시자(watchdog)로서의 언론에 대한 감시문제를 언급한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3월6일부터는 가 ‘심층해부 언론권력’을 연재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감시견의 감시자에 대한 감시’가 벌어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들려오는 말에 따르면 최근 조선일보는 특별팀을 구성해 한겨레신문사의 ‘비리’를 집중적으로 취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업의 기사 협찬문제를 비롯해 한겨레와 관련된 사안을 전방위적으로 탐문하고 있다는 전언입니다. 는 이미 ‘한겨레 무가지 비율 높다’는 기사 등을 통해 비판의 포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바야흐로 언론사 상호비판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것 같아 일단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지난호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담합에 의해 유지되는 거짓평화보다는 오히려 서로 처절하게 투쟁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한겨레신문사가 100% 깨끗하다고 장담하지도 않습니다. 만약 잘못이 있다면 솔직히 시인하고 고쳐야 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입니다. 다른 언론의 잘못을 지적하려면 자기의 허물도 겸허히 뒤돌아봐야 한다는 점도 스스로 명심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조선일보가 앞으로 한겨레의 ‘비리’를 파헤치는 데 얼마나 뛰어난 ‘취재력’을 발휘할지 기대되는 바 큽니다. 어쨌든 언론의 상호비평 시대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몇 가지 짚어야 할 대목은 있는 듯싶습니다. 우선 ‘치졸함’으로부터의 탈피입니다. 과 가 최근 문화방송에 융단폭격을 가한 예부터 들어봅시다. 이 스포츠신문들은 문화방송의 몇몇 프로그램을 지목해 시청률 경쟁, 선정성 등을 집중적으로 난타했습니다. 이런 보도가 문화방송이 지난 2월27일 방영한 ‘황색 스포츠신문’에 대한 보복이라는 것은 누가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방송사들도 잘못이 적지 않을 것인 만큼 비판 자체를 나무랄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 수준의 즉자적 대응밖에 할 수 없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진정으로 보복을 하고 싶다면 좀더 격조있고 심층적이며, 방송의 발전을 위해서도 유익한 보복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에서 야심차게 다룬 ‘한겨레 무가지 비율 높다’는 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경품공세 등을 어떤 신문들이 촉발시키고 심화시켜 왔는지는 재론하지 않겠습니다. 그 액수를 따져보면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시쳇말로 ‘폭포수와 물방울’ 차이라든가, 또는 언론자본의 무차별적인 공세 속에서 한겨레로서도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구차하게 변명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한겨레는 이런 서글픈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괴감을 분명히 가슴에 안고 있다는 점입니다. 무가지 살포나 경품살포라는 게 족벌언론들이 그만두면,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마이너신문’들은 아무도 감히 나설 수 없는 현실인데도, 의 기사에는 그런 대목에 대한 자성과 결의는 별로 엿보이지 않습니다. 언론사 상호비평의 궁극적 지향점은 언론환경의 개혁과 언론의 자기쇄신에 있습니다. 비판의 수준이 단지 ‘그렇게 떠드는 너희들은 정말 잘났냐’는 정도에 머무른다면 안타까울 노릇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앞으로 조선일보가 한겨레를 한번 마음껏 비판해주길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다만 언제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배어나오는 기사였으면 좋겠습니다. 한겨레21 편집장 김종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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