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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0 일째

인생시간표, 마침표보다 느낌표 (퍼온글)

표지 교정을 위해 인쇄소에 갔다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인쇄물들 사이에서 우연히 알록달록 예쁘게 인쇄된 초등학생용 `시간표'가 눈에 띄었다. 그 순간 문득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떠올랐다. 한 학년이 세 반밖에 안 되는 작은 시골학교 교실, 점심시간 뒤인 나른한 5교시 사회시간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 어떤 문제를 내시고 1번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교단 앞으로 나와 오른쪽에 서고 2번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왼쪽에 서라고 하셨다. 반장이 제일 먼저 씩씩하게 걸어나와 오른쪽에 가 서자 반 아이들이 선생님 눈치를 보며 우르르 오른쪽에 모였다. 답이 2번이라고 생각하여 왼쪽으로 가려던 나는 나 혼자 틀리면 창피해서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서 잠시 멈칫했다. 그때 나름대로 확신이 있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배짱으로 그랬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나는 처음 생각대로 왼쪽에 가 섰다. 물론 나 혼자서. 그런데 천만 다행스럽게도 답은 2번이었다. 핼쑥하고 허약해 보이지만 항상 얼굴에 연한 웃음기를 잃지 않으셨던 선생님께서는 과분하게도 나의 `용기'를 칭찬해 주시고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하라”며 선물까지 주셨다. 그 선물이 다름 아닌 `시간표'였다. 지금 아이들에게는 시간표처럼 흔한 것이 없겠지만 당시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컬러로 인쇄된 시간표는 전과에 부록으로 들어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니 나처럼 전과를 살 형편이 못 되는 아이들은 몽당연필로 삐뚤빼뚤하게 그린 보기 흉한 시간표 대신 번듯한 시간표를 하나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날 이후 나의 학교생활은 완전히 달라졌다. 학교라면 가기 싫다는 생각이 먼저였는데 집에 오면 어서 빨리 내일이 오기를 기다리는 아이가 되었던 것이다. 나의 추억은 어떻게 보면 참으로 서글펐던 시절의 파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바로 그런 추억들이 지금까지 나의 삶을 지탱해 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2월은 졸업의 달이다. 졸업은 인생 시간표에서 한 과정의 끝임과 동시에 새로운 과정의 시작이다. 졸업식 날이면 졸업생은 졸업생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만감이 교차하는 감회를 맛본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세상은 졸업의 의미를 성적표와 생활기록부에서만 찾는다. 마치 그것이 한 개인의 학창시절과 개인적 능력을 모두 말해주기라도 하듯 그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긴 안목에서 보면 인생의 가치는 돈의 많고 적음이나 사회적 출세 따위의 잣대로는 측정할 수 없다. 학창시절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이번에 졸업을 맞이한 수많은 사람들이 빛나는 졸업장을 안고 환한 모습으로 졸업사진을 찍기를 바란다. 아울러 꽃다발이나 선물보다도 많은 값진 추억을 한아름 안고 교문을 나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인생 시간표를 풍요롭게 채워주는 것은 사람을 등급화한 성적표나 생활기록부가 아니라 아름다운 추억이기 때문이다. 문현숙/출판편집인 - 한겨레 신문칼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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