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62 일째
향우회에 다녀와서...
연호형님과 화곡역서 5 호선으로 세종문화회관에 도착시간은 채 6시가 아직되지 않은 시각이었다.벌서 코피엔 금영이랑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띈다.모임 장소엔 면별로 구역에 앉고 명찰을 달고서 앉았다.우리노안면은 겨우 13-4 명정도가 전부였다.검찰청 서기관인 금영이가 젤로 출세한 공직잔줄 알았는데 부장검사 출신이 있었다..조 기선 부장검사란다.드디어 팡파레가 울리고 사회자의 국민의레 순으로 식은 시작이 되었다..재경 나주인이 30 만이란 말에 깜짝 놀랐다.정말로 그럴가?그렇게 많은 수가 서울에서 살고들 있을가?오늘여기 와서 내가 나주인이란 것에 긍지를 느끼게 하는 것을 느꼈다.이렇게 나주인이 성공한 사람이 많고 유명인사가 많았다는 것을 알았다.사회자의 장황한 내빈인사소개가 너무도 많아서 짜증이 날 정도였다.- 행자부 장관 최 인기...- 농수산부 장관 한 갑수...- 해군 참모총장 이 수영...- 대한 매일신문 사장....등등이 나주 출신이란다..국민의 정부에 들어와서 호남인 천지란 말이 들릴정도로 호남인맥이 중요 포스트에 진을 치고 있단 비아냥을 들을만 하다..- 한국사람이 고칠수 없는 것이 세가지 라고 합니다 ..내가 태어난 고향을 못고치고 ....부모로 부터 몰려 받는 성을 못고치고....고향을 그리워 하는 정을 못고친다고 합니다 ...하고 최인기 행자부 장관의 일장 축사가 이어졌다..오늘 세종문화회관은 정말로 나주인의 밤이었다..- 우리는 천년의 고향 목사골 나주인의 긍지와 자랑을 가집시다..이렇게 연단에 올라선 인사들은 한결같이도 나주의 자랑에 열성이다.그러나 세종문화회관이 좁다고 들어찬 사람들로 법석대는 향우회...시끄럽고 사람들이 많고.....그리고 길게 이어진 사회자의 지루한 연사 초청과 소개로 지루함이 배인다..공식행사가 끝나고 뷔페식으로 식사하고 자리가 비좁아 제대로 식사하기도 불편했고 면별로 모여서 기념사진도 촬영한것이 아마도 보람일거다..여기에 모였단 증표가 되니...그리고 화 춘하 등단으로 여흥을 즐기고 있었으나 난 나오고 말았다.같이간 연호형님은 그래도 그런 자리에서 빨리 일어설줄 모르고 마냥이다얼굴은 술한잔 하셨는지 벌그레 취한 얼굴이고...그래서 먼저 간다고 하고 나오고 말았다...끝나고 나오려면 한이 없을것 같았다...어디 모임이든 현재의 위치가 뚜렷한 사람은 과시하러 나오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어쩔수 없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금영이 처럼 그렇게 자기의 위치를 과시하려고 나오는 형이 있고...금영인 전이나 다름없이 그대로다.그러나 위치가 달라졌다고해서 다른 모습을 보여선 안되지..노안에서 나주까지 한 3 년을 같이서 통학했던 각별한 사이였다.그 작은 체구에 늘 단어장이 옆에 끼어있고 그는 노력파였다..아마도 불우한 가정을 새롭게 이르켜세울려는 그런 각오가 어려서 부터 몸에 배어 있었던 것은 아닌가?그가 출세하고 그가 위치가 나완 비교가 안되는 위치로 변신했다고 해도 난 그래도 인생을 실패한 것이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다.난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그래도 이정도의 행복을 만끽하고 살수 잇단것도 성공한 인생의 모델(?) 이라고 자평한다.금영이가 출세했건 내가 출세 못했건 그 차이가 어디가 다른단 말인가?그도 이젠 그 전성기는 서서히 몰락의 길로 가고 있는데...?그렇다고 해도 그는 그의 인생을 최선을 다하고 살고 그 어려운 환경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살았다는 것은 인정을 해주어야 한다.나주 향우회...다들 그렇게 성공들 하고 그렇게 사회자가 앞서 발표하고 그런데 나는 어떤 위치란 말인가?그렇게 다른 사람처럼 출세는 못했어도 난 내 인생을 성실히 그리고 내가 가야 할길을 그렇게 달려왔다.그런 생각을 한다면 하나도 후회가 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한다...봄비가 맞기 좋게 내린다.그래도 그 세종문화회관을 벗어나서 돌아올땐 마음이 그저 유쾌한 것만은 아닌것이 왠일일가?이렇게 마음이 허전한 것이 저 봄비 만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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