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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초파리보다는 월등한 존재여야 (퍼온글)

부자의 선행엔 이상하게 감동이 없다. 돈만 있어봐라 나는 그것보다 더 좋은 일도 할 수 있다라는 질시어린 비아냥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이나 이익을 뒤로 한 채 인간의 근본도리를 지켜나가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나가는 모습은 언제나 감동을 자아낸다. 인간유전자 지도가 완성되어 인간의 유전자수가 초파리보다 별로 많지 않다는 뉴스가 화제가 되고 있다. 대단히 정교하고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데 대한 실망이랄까 놀라움 때문이다. 그럴줄 알았어 보라구 인간이 본래 벌레나 짐승보다 더 나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 보면 몰라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 얼마나 많으냐 인간은 초파리에서 별로 진전된 것이 없는 존재야라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유전자수가 예상보다 적다고 실망하거나 놀랄 이유는 없다. 인간이 초파리나 다른 짐승과 구별되는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더 많은 유전자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매일의 일상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는 채, 휴일의 등산길에 앞사람의 엉덩이만 쳐다보고 걷듯 살아가다가 가끔 설명할 수 없는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삶과 행동을 통해 인간은 정말 특별한 존재라는 인식을 하게 되는 것이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부유하거나 문명적인 사회에서가 아니라 가난하거나 비문명화된 사람들에게서 발견된다. 의무는 지키되 권리는 포기 마을의 한 할머니가 죽었다.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린 소년은 사람들이 몰려와 상속자로 지명되었다고 하자 허둥지둥 집으로 향한다. 어설프나마 시신을 수습하고 차례로 일을 수행하고 있는 동안 집 안팎에 모여있던 친척과 동네사람들은 소년의 움직임을 꼼짝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소년은 대강 일을 마치자 모든 사람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앞으로 나갔다. 할머니가 여러분에게 빌려쓴 돈은 제가 상속자로서 모두 갚을 것을 약속합니다. 일순 탄성이 터지고 사람들은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아직 더 들을 말이 있다는 듯 꼼짝않고 자리를 지켰고 긴장은 계속되었다. 소년은 울먹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키고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할머니로부터 돈을 꿔간 사람들이 있으면 이 순간부터 전부 탕감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환성을 지르고 그때부터 시끌벌적한 장례절차가 시작되었다. 작년에 부산영화제에서 본 중앙아시아영화 '양자'의 한 장면이다. 가난한 마을에서 돈을 꾸고 꿔주고 살다가 한 사람이 죽자 마을 주민들의 관심은 내가 꾼돈을 받을 수 있을까하는 것과 꾼돈을 혹시 갚지 않아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떼어먹힐줄도 모르고 떼어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사람들은 의심하거나 비굴해지고 약삭바르거나 삭막한 행동을 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의무는 지키되 권리는 포기하겠다는 명백한 선언이 있은 뒤 마을사람들은 죽은 사람에 대해 진정으로 애도하고 상속자를 잘 골랐다고 칭송하고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미풍양속은 그대로 전승될 것이다. 자신을 위한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 국내 어떤 방송사가 티벳의 가난한 마을을 취재했다. 불가사의한 것은 그들이 그처럼 가난한데 행복하기 그지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항상 기도하고 살기때문이라는 것이다. 모두 남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이다. 자기자신을 위해 하는 것은 기도가 아니라고 말하였다. 쪼글쪼글한 주름살마다 환하고 선한 표정이 가득한 중년의 노동자가 나를 뺀 다른 사람과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을 위해서 기도한다고 말하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기도의 올바른 뜻은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닌가. 자신을 위해 기도하면 개인의 이해가 상충하기 때문에 조물주도 모든 사람을 만족할 수준의 응답을 해 줄 수 없지만 자신을 빼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것이라는 대답이다. 그들은 그러한 지혜를 어디서 얻었을까.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것은 유전자수나 인간이 만든 문명때문은 아닐 것이다. 문명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자존심을 갖고 남을 둘러보면서 사는 모습이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며, 그런 지혜를 어떻게 얻었는지 그렇게 살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는 결코 유전자로는 밝혀낼 수 없는 비밀의 영역일 것이다. 김선주 논설위원 ( 한겨레 신문칼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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