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63 일째
아직 낯선 ‘첨단기술과의 동행’(퍼온글)
핸드백을 들고 우아하게 걷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내 가방은 아기 기저귀가 한 보따리는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커다랗다. 그 안에는 수첩도 있고 지갑도 있지만 내 가방이 어깨가 처질 만큼 무게가 나가는 까닭은 그 때문이 아니라 휴대전화와 전자수첩, 차 열쇠에 카드키 등등 어느새 ‘생활의 필수품’이 돼버린 일단의 쇠붙이들 때문이다.매일 두 번씩 치르는 방송사 출퇴근길은 나처럼 건망증 심한 사람에게는 무슨 ‘침투작전’만큼이나 복잡하다. 몇 번씩 되새기건만 나는 우리 아파트 주차장 카드키와 아파트 출입키, 자동차 키, 또 회사 주차장 출입을 위한 카드키와 사원 카드키 등등의 그 많은 열쇠들 가운데 한가지는 꼭 빠뜨리고 나와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한 손에는 짐꾸러미를 들고 한 손으로 카드키를 찾느라 문 앞에 서서 주섬주섬 어깨에 맨 그 커다란 가방속에 손을 넣고 휘휘 더듬는데 왜 꼭 하필 그런 때만 골라서 내 휴대전화는 짜증스럽게 울리는 건지!컴퓨터와 휴대전화에 대해 말하자면 난 남들보다 비교적 늦게 그들과 친해진 편이다. 직업상 필요는 하지만 워낙 기계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하는 둔한 나인지라 끝까지 버티기로 나갔다. 하지만 그런 나도 이제는 컴퓨터로 이메일도 보내고 휴대폰 문자 메시지도 제법 척척 보낼 줄 안다.그런데 그렇다고 내가 그것을 주위에 자랑할 수 있느냐? 천만에! 남들은 이젠 PDA니 IMT-2000이니 떠들며 신기술에 흥분하고 있는데 그 앞에서 내 어설픈 발전을 자랑했다 무슨 구박을 받으려고?며칠전 멀리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컴퓨터 자판 몇 번 두드려서 안부를 물을 수 있었던 점이야 물론 신기술이 가져온 장점이겠지만 그 가벼움만큼 빨라진 ‘의사소통’의 ‘광속도’에 적응한다는 것은 굼뜨고 둔한 내게는 젖먹던 힘까지 짜내야 가능한 일이다.얼마전 스위스 다보스에서는 세계적인 석학들과 경제, 사회계의 리더들이 참가한 가운데 경제 포럼이 열렸다. 최근 몇년간 이 포럼에서의 화두는 ‘기술이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는데 올해는 특히 ‘인간을 편리하게 해주는’ 기술에 대한 반발을 여기저기에서 느낄 수 있었다는 한 외국인 칼럼니스트의 글을 읽었다. 그에 의하면 한 포럼 참가자는 “이 시대 업계에서 승리하는 관건은 적응하느냐 죽느냐, 어디에서든 하루 24시간 일할 수 있느냐 아니면 뒤에 처지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또 이에 대해 한 굴지의 회사 대표는 “이같은 언급이 마치 지옥에 대한 묘사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가 쉬지 않고 경쟁하든지, 아니면 죽든지 해야 한다면 언제 음악을 듣고 책을 읽습니까? 차라리 지구에서 내리고 싶습니다”라고 하소연을 했단다.그래, 고민은 나만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세상의 신기술이란 것이 어째 점점 나를 힘들게 하고 따라가기조차 지치게 만든다 싶었는데 벅찬 것은 그처럼 대단한 회의에 참석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외출 한번 하는 데 필요한 키가 너무 많아 헷갈리는 내게는 정말 위안이 되는 소식이다.〈황현정/‘KBS 9시 뉴스’ 앵커 ( 경향신문 칼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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