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2 일째
숨막히는 종교 패거리주의 ( 옮긴글 )
1997~98년에, 필자가 한국에서 살았을 때, 필자의 친구인 몇 명의 젊은 한국 지식인들은 심한 취직난을 겪었다. 그 때 그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없을까 싶어서 필자는 매일 같이 여러 신문들의 교수 초빙 공고를 찾아 읽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일까? 인문 계통의 교직원들을 상당히 많이 모집하는 한 지방 사립 대학교의 공고문의 `응모 자격'란에서, 박사 학위의 소지를 요구한 바로 뒤에 `순수한 ×××신앙을 가진 사람'만을 모신다는 말이 나왔다. 그것도 모자라 소속 단체의 `교인 증명서'까지 요구한다는 말이 뒤에 또 나왔다. 처음에 필자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도대체 아무리 종교적 재단이 세운 학교라 해도, 신학 관련 학과도 아닌, 일어일문과 등의 교수가 반드시 특정 신앙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 과연 합리주의적 현대 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학생들에게 특정 신앙을 심어주겠다는 재단의 취지는 어느 정도 있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여느 나라와 같이 한국의 헌법대로 개인 자유 선택의 `사적인 영역'으로 남겨져 있는 종교와, `공적인' 영역인 고등 교육이 서로 혼동되어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 원칙에 과연 맞는가? `우리 종교인만이 교수할 수 있다'는 공고문을 읽었을 때 필자의 머리 속에서는, 대학교 교직원에게 `당성'과 `사상적 건전성'을 요구·검증했던, 옛 동구권의 전체주의적인 교육 체제가 자신도 모르게 떠올랐다. 그러나, 한 번의 큰 충격을 받은 필자는 그 이후 신문 공고를 계속 뒤지는 과정에서, 검증된(?) `교인'만을 위한 초빙 공고를 상당히 많이 발견하였다. 한국이라는 형식상의 `민주 국가'에서 이와 같은 노골적인 위헌적 종교 차별이 버젓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려웠던 필자는, “교인만 모신다”는 한 수도권 사립 대학교에서 안면이 있는 유명한 러시아 전문가가 계약 교수로 와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기억났다. 그 분에게 전화를 걸어, “아니, 정말 전 교직원들이 모두 한 특정 종교만 믿고 있느냐”고 물어봤다. 그 분의 대답은, “믿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옛날에 정기적으로 레닌주의 사상 강연에 끌려갔듯이, 매주 다들 종교 의례에 가야 하지요. 안 가면, 왕따를 당하고 실직의 위험이 곧 닥치지요. 나는 다행히 외국인이라는 특수한 처지 덕분에 안 가도 별 큰일은 안 나지만, 그래도 주위의 눈치가 썩 좋지 않죠. 한 단체가 똑같이 움직여야 한다는 원칙은, 사실 옛소련이나 여기나 뭐가 다르겠소?”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필자는 갑자기 호흡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전체 사립 대학교의 30% 이상이 특정 종교의 재단 소유인 한국의 특수한 여건에서 다른 종교에 속하거나 무신론자인 젊은 지식인들은, 이런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종교적 패거리주의'의 현실 앞에서 얼마나 많은 절망감과 소외감을 가져야 할 것인가? 헌법의 `신앙 자유'의 조항을 그대로 따를 뿐인 그들이 무슨 죄로 `3순위 자격'이 되어야 하는가? 종교 신앙의 본질을 따져 보면, 진정한 신앙이라는 것은 남에게 결코 쉽게 보여 줄 수 없는, 아주 개인적인 부분이다. 기도하려면, 골방에 들어가서 남이 보지 않게 하라는 예수의 말씀은, 바로 이를 의미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신앙의 증명서'를 요구하는 한국 일부 종교 계열 대학교의 자세는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 신앙적인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최소한 원수도 아닌 타종교의 신도 정도는 포용할 줄 알아야 되지 않는가? `황제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엄격하게 구분하셨던 예수의 정신을 진정으로 살리자면, 사회를 위한 교육과 개인의 영혼을 위한 종교 신앙은 엄격히 구별·분리되어야 되지 않는가? 올바른 종교를 위해서라면 타종교인·무신론자를,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선교의 대상'으로 삼는 강요의 악습과, `우리 모두 다 같이' 식의 집단 동질성만 강조하는, 전근대적인 패거리주의는 하루 빨리 청산돼야 하지 않을까 한다. 박노자/오슬로 국립대학 교수·한국학 - 한겨레 신문 컬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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