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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0 日目

스승, 그 무거운 어깨 ( 퍼온글 )

옛날에는 교사가 아이들이 세상으로 나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없던 시절 아이들은 오로지 교사를 통해서만 지식의 세계, 학문의 세계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책이 있었으나 그것은 극히 제한된 아이들에게만 허용된 특권이었다. 학부모들은 대개 무학이었으므로 아이들의 교육은 전적으로 교사에게 위임되었으며 교사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그때도 교사에 대한 대우가 박하기는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반들반들 닳은 낡아빠진 양복 소매와 누렇게 바랜 와이셔츠는 바로 교사의 상징이었다. 아마 그 시절 교직이 철밥통이었기 때문에 교직을 선택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소명의식이니 사명감 같은 거창한 소리까지 할 것은 없으나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즐겁지 않고서는 교직에 머물러 있지 못했을 것이다. 텔레비전이 있고, 컴퓨터가 있고, 무진장으로 책을 접할 수 있는 오늘, 교사가 아이들이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란 말은 옛말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옛날같이 교사를 믿고 존경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어서만도 아닌 것 같다. 좋은 학교를 나와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가 된 사회에서 모든 교육은 입시 중심으로 되었고, 입시에 매달린 아이들에게 교사는 입시만을 지도하는 학원강사나 다르게 보일 턱이 없었다. 더욱이 학력이 높아진 학부모들은 적극적으로 교육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 참여가 자기 자식 챙기기 식, 자기 자식 좋은 학교 보내기 식으로 변모하면서 교육은 더 심하게 일그러졌다. 한국의 교육이 문제가 많다는 것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얘기다. 입시제도는 갈팡질팡 갈피를 잡을 수가 없고, 입시 부정, 인사 부정도 좀체 뿌리뽑히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국민의 정부가 개혁의 상징으로서 교육개혁에 액센트를 두었던 점은 당연하다. 한데 전후 사정은 생각지도 않고 모든 문제는 교사에서 비롯된다는 듯 개혁의 대상으로 먼저 교사를 지목한 것은 잘못이다. 무턱대고 나이 먹은 교사를 몰아내고, 촌지를 받는 교사, 체형을 가하는 교사를 고발하게 함으로써 그러잖아도 권위가 떨어진 교사의 권위를 더욱 떨어뜨리고, 교실을 동공화하고 난장판으로 만든 상처는 쉽게 치료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이 많은 교사가 덜 열성적인 것은 부인하기 어렵고, 또 촌지를 요구하거나 받는 교사도 많고, 그 폐해가 심각한 것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나이 많은 교사 가운데도 열심인 교사가 적지 않고, 더 많은 교사들이 촌지와 무관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체형 문제도 그렇다. 체형은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도매금으로 범죄시하는 것은 반교육적이다. 얼마 전 교육부의 수장이 교사들이 안정된 밥벌이를 믿고 공부를 게을리해서 입시학원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뜻의 말을 했지만, 그것도 일부 얘기이다. 더 많은 교사들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과 함께 노는 즐거움 속에서 교사 노릇을 하지 교직이 철밥통이어서 교사 노릇을 하지는 않는다. 공교육기관이 입시만을 목표로 삼고 있는 학원과 단순 비교되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교사들이 모두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판단도 피상적인 소리이다. 사실 교육에서 개혁된 부분은 교사보다 다른 데 더 많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이다. 최근 한 교육감이 비리에 연루되어 기소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미 1년도 훨씬 전에 그 지방의 시민단체와 교사들에 의해서 고발되었던 사건이 이제 와서 사정당국에 의해서야 겨우 드러난 것은 교육당국이 실제로는 개혁에는 별 뜻이 없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어쩌면 교육개혁은 아이들은 교사를 통해서 학문의 세계, 지식의 세계로 나간다는 고전적 규범을 살리는 데서 그 출발점을 찾는 것이 옳은 해법일지도 모르겠다. 신경림/시인 ( 한겨레 신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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