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2 일째
한국과 독일 지역주의의 차이 (퍼온글)
한국을 떠나 독일에 온 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7년 동안 한 번도 한국을 다녀 오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이 무서우리만치 많이 변했다는 것을 가보지 않고도 이 먼 땅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마땅히 변해야 할 것들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어 우울하다. 이런 우울감을 자아내는 것 중 하나가 지역감정이다. 지난 4월 총선을 생각하면 그것이 선거운동이 아니라 지역주의 선동운동과 다를 것이 없었다고 보인다. 선거를 출신도별로 뽑아 대체했으면 되었을 것을 왜 비싼 돈 들여 선거를 했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 한국으로 발령이 나 이주를 해야 하는 독일인에게 한국말을 가르친 적이 있다. 그가 나에게 묻기를 “한국은 갓난 아기를 지역구에 내세워도 당선이 된다고 하던데 사실이냐?” 수업 중 입안이 씁쓸해 지고 화도 났지만 “그래 아직도 변한 것 없이 이렇지!”라는 생각을 다시 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의 지역감정은 세월이 흘러도 마르지 않는 물과 같고, 계절이 바뀌어 가을이 오고 겨울이 와도 떨어지지 않는 나뭇잎과 같다. 지역주의가 물론 한국에만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그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이곳 독일만 해도 지역주의의 정치기반이 두껍다. 독일 바이에른주는 독일기독교사회당이 선거 때마다 거의 100% 석권을 하고 루르 공업지역은 늘 사회민주당이 다수표를 차지해 왔다. 독일 남서 쪽은 기독교 민주당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것이 독일의 지역정치 모습이다. 정치 선진국 독일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당정치가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지역주의가 반드시 그 나라 정치의 수준을 가리키는 지표는 아니라는 말이다. 문제는 한국의 지역주의가 타 지역 사람들을 배척한다는 데 있다. 독일의 지역주의는 지역의 특수성을 바탕으로 하여 지역의 자주성을 유지하면서 그 연대·협력을 촉진하는 데 특성이 있다. 바로 협력과 연대의 틀 안에서 경쟁도 하고 비판도 한다. 통일 10년이 지난 지금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통일을 통해 유럽의 정치 경제의 중심국으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여기에는 지역간 분쟁을 하는 대신 협력하고자 하는 독일 국민들의 공이 컸다는 사실을 빼 놓을 수 없다. 또한 동서독 국민들 사이 여전히 넘어야 할 국민통합과정이 남아 있지만 이미 여당이었던 기민당의 총재자리에 76% 지지로 동독출신 여성정치인이 들어섰다. 이는 현재 나타나는 동서독 국민의 이질감이 단지 국민정서의 통합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인 현상임을 말해 줄 뿐이다. 최근에 내가 분명히 알게 된 사실은 지역감정을 선동하고 있는 우리나라 정치권 이면에 단단하고 견고한 국민적 기반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감정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저질 정치가들이 있고 그 정치가들은 국민의 표를 얻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권력의 상층부로부터 주입된 병든 가치관을 고스란히 안고 그들과 지역감정에 대해 모종의 합의를 하고 있는 셈이다. 즉, 지역감정을 망국의 병이라 치부할 정도로 그에 대해 저항하면서 지역감정을 지지하는 이율배반적 속성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이런 무책임을 공략하는 한국의 진보세력은 아직도 지역주의의 사나운 불길 앞에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이미 가을이 가고 있다. 이제 겨울 준비를 하는 모습이 여기 저기서 보인다. 그 푸르던 나뭇잎들도 붉게 물들더니 낙엽이 되었고 이제는 앙상한 가지를 보이는 나무들도 더러는 보인다. 그러나 한국의 지역주의는 겨울이 되어가도 시들 줄 모르는 가시를 소유한 장미처럼 보인다. 언제까지 이 독가시 달린 장미의 자양분만 되고 있을 셈인가! 독일 하이델베르크/강대진· - 한겨레 신문의 칼럼에서 옮긴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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