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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2 日目

망우물(忘憂物) 사연 ( 퍼온글 )

김학(金鶴)님의 수필 술 한 잔이 그리울 때가 있다. 굳이 술의 청탁을 가릴 필요는 없다. 기분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한 잔 술을 마시면 된다.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처럼 주방이나 거실에서 양주를 얼음에 재워 마셔보는 것도 그럴 듯하다. 아니면 가벼운 차림으로 골목길을 돌고 돌아 허름한 대폿집의 문을 밀치고 들어가 빈 구석자리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도 싫지는 않다. 빗줄기가 하염없이 퍼붓거나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날이면 더 운치가 있을 게다. 낯선 사람들 틈에 끼여 자유로운 언어의 난무 속에 때로는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기도 하고 또 때로는 나만의 생각에 골똘하면서 한 잔, 또 한 잔 마시는 것도 진정 술꾼의 참 멋일 터이다. 독작(獨酌)은 독작대로, 대작(對酌)은 대작대로 의미가 있다.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애주가(愛酒家)이다. 술은 마실수록 잘 마시게 되는 것일까. 사실 나는 대학 시절 막걸리 한 사발에 취했던 추억을 갖고 있다. 군대 시절에도 그렇게 즐겨 마시는 술꾼은 아니었다. 술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몇 잔 술을 마시고나면 알딸딸해지고 약간 몽롱해진 기분을 느낄 수가 있어 좋았다. 그 상태를 즐겼다. 술에는 양면성이 있다. 술 때문에 건강을 상하고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술로 인해 사업이 번창하고 직장에서는 인정을 받아 잘 나가는 사람도 없지 않다. 술은 어쩌면 칼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생명을 구하는 의사의 칼이 있고, 목숨을 빼앗는 백정의 칼이 있듯이 어쨌든 술이나 칼을 쓰는 이의 용심(用心)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다. J교수는 나와 20년 지기다. 젊었을 적에 만난 J교수는 담배는 한 모금도 안 피우지만 술은 즐겨 마셨다. 우리는 곧잘 어울려 다니며 술을 마시곤 했었다. 주머니 사정이 좋을 때면 수퍼마켓에 가서 맥주를 마셨고, 그렇지 않을 땐 값싼 대폿집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으레 그렇듯이 술자리의 대화는 무궁무진이었다. 우주 만물이대화의 소재가 되었다. 건설적인 이야기, 비판적인 이야기, 슬픈 이야기, 기쁜 이야기, 과거 이야기, 미래 이야기 등 제한이 없었다. 붙임성이 좋은 그는 술자리에서 한두 잔 술잔을 주고받으면 초면일지라도 선후배가 되고, 친구가 될 정도로 발전했다. 시골의 중학교 교사이던 그가 오늘의 대학 교수가 되기까지 술의 지원사격이 큰 원인이었으리라 믿는다. 몇 해 전부터 건강을 다스리기 위해 술을 끊은 그를 만나면 싱겁다. 합석한 그를 제외하고 술잔을 주고받는 일도 유쾌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다방에서 차 한잔 마신 뒤 헤어지자니 어쩐지 아쉽고 허전한 기분이다. 그가 옛날처럼 건강을 되찾아 잔 잡아 권할 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할 뿐이다. 애주가라고 하지만 무애 양주동 선생처럼 술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모아 문주 반생기(文酒半生記)를 묶어 낼 처지도 아니고, 수주 변영로 선생 일행처럼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셔서 벌건 대낮에 벌거벗은 채 소를 타고 시내로 나올 정도의 이야기 거리도 없다. 술을 마시기는 많이 마셨지만 술꾼다운 이야기 거리 하나 남기지 못해 아쉽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도 나와 다를 바 없었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술은 사양하지 않고 마시지만 난(亂)의 정도에 미치지 않게 처신했던 게 공자라니 재미가 없었을 것은 뻔하다. 나의 경우 외가쪽도 술을 잘 마시고, 친가쪽도 그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태생적으로 애주가의 기질을 타고 난 셈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까치저고리를 입었을 적부터 술을 먹이셨다고 한다. 나로서는 애주가문의 전통을 잇기 위하여 장손으로서 하드 트레이닝을 받은 셈이다. 큰할아버지 회갑 잔치 때 나는 큰집 부엌 앞에 있는 구정물 통에 빠진 적이 있었다고 들었다. 잔치 기분에 할아버지께서 나에게 술을 먹이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의 기억으로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어머니의 귀띔이시니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김삿갓처럼 술 한 잔 마시면 시 한 수를 쏟아낼 수가 있다면 그야말로 생산적인 음주가 아니랴만, 나는 그렇지는 못하니 술이나 축내는 머리채나 휘어잡고 살림 도구나 내던지는 망나니는 아니니 그거라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두보(杜甫)나 이백(李白)은 천하의 술꾼이지만 천하의 명문(名文)을 남겨 후세 사람들까지 추앙하건만, 나는 명색이 술꾼은 술꾼이지만 명문을 남길 수 없으니 그 어인 일일까? 그들이 마신 술과 내가 마시는 술의 차이 때문이라고 변명이나 해 둘까. 술은 진심을 나타내고 거울은 모습을 나타낸다고 한 영국의 속담은 일리가 있다. 그러기에 가까워지려면 술자리를 자주 할 일이다. 이승을 하직하는 날까지 술 한두 잔 정도 마실 수 있었으면 한다. 세상살이 고달파도 술 한 잔 마시면 온갖 고뇌 잊을 수 있으니 술을 망우물(忘憂物)이라 하겠지?- 인터넷에서 퍼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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