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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62 일째

성의

연호 형님에게 드릴 선물을 준비하려고 우체국의 그 고향 특산물의 카타로그를 뒤적이었다.....매년 명절이면 그래도 작은 성의를 잊지 않고 하기땜에 늘 마음은 좋은 선물을 하고 싶고 해도 그런 선물고르기가 쉽지 않다....-그 형님이 좋아하는것이 무언가?-선호하는 식품이 아니 술이 어느것인지?-건강을 생각하여 건강보조 식품을 살가? 하나 건강 식품이라고 한것도 사람에 따라서 선호하기도 하고 먹지 않은 것도 있어 선물은 그런 특정한 것보담은 일반적인걸 선택하는 것이 좋다..전에 내가 선물받은 영지버섯은 그 씁쓸한 맛땜에 내가 기피하여 몇년간이나 굴러다니다가 어디로 가버렸는지도 모른 경우도 있다..그럼 술이나 누구나 먹을수 있은 인삼종류등 뿐이다..그래선지 거의가 술 종류다..들어보지도 못한 술 그 지방 전통주라고 하는데 과연 그 술이 전통주인지 그런 이름만 붙인 술인지 어디 검증할 곳이있는가?그 형님은 술도 그렇게 선호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것이나 보낼수도 없고 ..그 양보담은 그 독특한 향과 맛으로 선정해야 하나 보다..그러다가 결국은 그 경주지방의 솔나무로 만든 술을 샀다....-은은히 우러나는 그윽한 솔향이 묻어 나는 경주의 특산주....아니 택배가 되고 비용도 더 들지 않고 또한 농산물이나 그런 토속주가 또한 그 고향의 명예에 관련된 것들이라 일단은 그 재품에 신뢰가 가는것이 아닐가?어젠 어머님의 선물을 할것을 보려고 뒤적이다가 원체나 노인네가 좋아하는것이 없어서 성금을 보냈지만 그 형님에겐 그럴수도 없고.....우체국에 그 상품코드번호 확인하고 돈만 입금시키면 만사는 끝이다...이렇게 세상이 편해졌다...명절을 보내고 나중에 들르면 된다....가까운 곳에 있어도 가지 못한 것이 참 미안한 맘이고...그때 추석에 선물하러 가고 이번이니 나도 참 너무한다...바로 마음만 먹음 지척인데도 그렇게 나태한것은 무엇땜인가?사람은 나이가 들으면 모든것이 그렇게 게을러 지고 싫어 지는가?그러나 명절이 어디 선물로 대신하고 만남도 이루어 지지않아도 되는가?그 형님에게 새배는 가야지....사람은 늘 만나고 애기 하고 대화하는 중에 정이 들고 더 가까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아닐가?자주 만난다는 것....자주 얼굴을 보면서 이해의 폭을 넓혀 가는 일이 바로 인간이 사는 모습이 아니겠는가?전에는 그래도 ...자주 찾아뵙고 그 형수가 만든 구수한된장국에 밥도 자주 먹고 오기도 했는데 이젠 그런 것이 왠지 싫다...만나는 것도 가서 대화하는것도 싫어 지곤 해서 탈이다 그 형님은 전이나 지금이나 한치도 틀림이 없이 그대로 인데 내가 건방지게 변하고 있나 보다...늘 그런 사람...늘 거기에 있는 사람....언제 대화해도 한결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변덕이 심한가?연호 형님은 나의 인생에서 정말로 소중한 만남이 된 사람이다...그리고 그 인연의 끈도 질기다...순천에서 서울에 왔을때도 그 비좁은 아파트에서 같이서 살았고...아니 내가 살겠다고 했었다...그리고 그 서대문서 여기로 이사와서도 가까운곳에 살고 있으니 사람의 인연이 이렇게 질기게도 이어질가?어쩌면 그런 인연은 더욱이나 더 질기게 그리고 길게 이어질거란 확신도 든다.....순천으로 미리 발령을 내준 분도 형님이고 ...그 순천까지 전화 걸어서 잘 좀 보살펴 달라고 부탁한 분도 형님이고......그 순천에서 날 서울로 오게 한것도 연호형님이고....그때 서울로 가야 하는가 하는 번민에 난 괴로워 했다 도저히 그 시골을 벗어나서 도심에서 산단것이 즐겁지 않을 거란 막연한 이유였다..그땐 순천에선 이젠 자리잡고서 한참이나 안정된 생활을 하려는 참인데 연호 형님의 갑작스런 이동하란 전화가 얼떨결에 승낙하고 말았지만 ...그때 아버지의 섭섭함은 말할수 없었다...그래도 순천에 있단 것이 당신은 든든히 생각했나 보다......당신은 나주로 난 서울로 갈라셨을때 나의 맘도 그렇게 허전하고 그랬다-이젠 자주 못오겠구나....멀리 가니...그렇게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심서 무심히 하시던 아버지의 말씀...그렇게도 내 가슴에 허전히 들릴수가 없었다...삶이란 이유로 난 부모의 간절한 바램을 무릅쓰고 천리타향으로 가야 한다는 이런 비감스런 마음...사람은 헤어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 숙명인지도 모른것이고 .....서울로 올라옴서 아버지의 그 초라한 모습이 자꾸 어른 거려서 난 정말로 마음이 그렇게 착잡하곤 했었다.....서울에 와서도 한동안은 같이 살았던 그 인연......날 친동생처럼이나 친절하게 대하여 주시고 그 형수는 더욱이나 가깝게 날 대해주셨다...그 친동생 문호가 그렇게도 엉뚱한짓거리로 연호 형님과는 판이한 성격이고 동생이 정답지 못한 이유로 그런 것인가?남남인데도 친동생같이 같은 집서 살았던 것도 특별한 형님의 대우도 대우겠지만 그 형수가 날 좋아했었다...마치도 친 시동생같이도 ....그렇게...그래서 아는 사람에겐 늘 시동생이라고 소개도 함서 그렇게 당신은 같이서 살았지.....나도 그런 형수가 친형수 보담도 좋아서 늘 대화를 하고 가깝게 지내고 한집에 살면서도 어디가 불편하거나 어려운 상태도 아니고 ...그 12 평아파트에서 그 형님식구가 5명..그 작은 방은 내가 살았고.....그래도 그렇게 살았던 시절이 그렇게나 좋았던 것 같다..그리고 공직을 끝내고서도 연호형님은 나와 같은 y구에 몸담고 있다...난 공직자로 형님은 막강한 위치(?)인 구의원으로 남아서 나의 보이지 않은 후원자가 되어 주고 있다....보이지 않은 지원...내가 어려울때 그 형님은 늘 울타리가 되어주시고 늘 애로 사항을 먼저 알고 해결해 주신 분이다...친형도 아닌 분을 이렇게 긴 세월동안이나 깊은 인연으로 이어온 사람도 드물것이다....그건 신뢰가 이어진 것이 아닐가?김 연호 형님.....이분은 내가 공직이 끝나고도 인간적으로 늘 가까이 좋은 인연으로 남고 싶은 몇안된분의 하나다.....그런데....내가 넘도 무심한것이 아닐가?요즘은 소주도 한잔 한지가 한참이나 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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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992 사랑과 고독, 그리고... 6991 독백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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