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2 일째
떠나려는 자들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사는 것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대한민국을 음해하려는 불순세력이 뿌린 삐라에 적힌 글귀가 아니다. 어엿한 국회의원이 13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 발언가운데 한 토막이다. 그것도 야당이 아닌 집권 민주당 소속 의원의 말이다. 그는 반부패 기본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한국현실을 그렇게 묘사했다. 정치적 수사를 감안하더라도 그 의원의 발언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집권당 의원이 이런 발언을 서슴치 않을 때는 그만큼 민심의 동향이 심각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얼마전 한국 대학생들을 상대로 벌인 한 여론조사에서 67%의 학생들이 이민을 가고 싶다는 응답을 했다고 한다. 이 또한 매우 충격적인 보고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 가운데는 적극적인 이유에서 해외이민을 희망하는 학생들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자신의 생존가능성을 확신하지 못하거나,한국 사회에 이런저런 이유로 절망한 끝에 해외이민을 마지막 탈출구로 여기는 학생들이 대부분일 것이라는 해석이 보다 진실에 가까울 터이다. 현실에 절망한 사람들이 어디 대학생들 뿐이겠는가.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아래서, 최근의 제2경제 위기 속에서 하루 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들,구멍가게로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다가 불경기와 대자본에 밀려 생업을 포기해야 할 수많은 영세 자영업자들,천직으로만 알고 열심히 일한 보람도 없이 빚더미에 올라앉은 농어민들이 느낄 절망을 어찌 이들 대학생들에 비하랴. 그럼에도 대학생 열 명중 여섯명 이상이 해외이민을 꿈꾸고 있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이 땅의 미래를 펼칠 젊은 대학생들이 이 땅을 뜨고 싶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미래가 없음을 뜻하는 것 아닌가. 무엇이 이 대학생들을 절망으로 내몰고 있는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취업난 등 직접적인 이유도 클 것이다. 하지만 67%가 이민을 원하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그런 차원의 문제라고 볼 수 없다. 집단적·구조적인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한국 사회가 총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회임을 말하는 것이다. 짐작컨대 이들을 절망케 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우리사회에 팽배한 사회적인 불의와 경제적 불평등이 아닌가 싶다.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층의 도덕적 타락과 부정부패가 끝도없이 터져나오는 사회·경제적 구조,힘없고 돈없는 사회적 약자들은 이리 차이고 저리 밀리는 사회, 이런 천박하고 부조리한 세상이 좀처럼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서 오는 좌절감,무력감,울분이 이들에게서 희망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닐까. 70-80년대 대학생들은 독재체제라는 뚜렷한 투쟁대상이 있었다. 만악의 근원인 독재체제를 무너뜨리면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독재정권이 물러간지 10년이 다 돼가면서 민간 정부가 두번이나 들어서고,여야간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지고,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아래서 혹독한 시련도 겪었다. 그럼에도 사회적 불의는 여전하고 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깊어졌다. 사람보다는 돈이,공동체적 연대의식보다는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이,개인의 능력과 자질보다는 지연·학연 같은 전근대적 연줄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모순과 부조리를 타파하자는 것이 `개혁'이라고 한다면, 현 정권이 표방한 개혁은 근본적으로 방향이 잘못 설정됐거나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3년전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했던 수많은 민초들이 지금 자신의 애국적 행동을 깊이 후회하고 있다. 한국전쟁이래 최대 국난을 맞아 떨쳐일어났던 민초들이 왜 쓰디쓴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고, 67%의 대학생이 왜 이민을 꿈꿔야 하는지 대통령과 집권 민주당은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 논설위원 박우정- 한겨레 신문칼럼에서 옮긴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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