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6 일째
취 미
난 원래가 돈버는데는 자신이 없다..재테크엔 영점이다....하기야 공직에서 돈번단것이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돈이란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것인가.......그래도 내가 공직을 시작하던 초창기땐 맘만 먹고 재테크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그런 면에 관심을 갖고 돈을 밝히는(?) 사람들은 지금은 거의가 다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 번듯한 집도 장만하고 잘들 살고 있다...........지금도 주식투자등으로 짭잘한 수익을 올리고 그 돈으로 차도 샀다던 김규태....주식 마저도 난 취미가 없다...돈버는 것과는 담을 쌓아서일가 도통 관심이 없다.동사무소에 근무하던 초창기 시절은 맘만 먹으면 돈을 벌수 있던시절이 있긴 있었다........1970년대 후반만 해도 .......서대문구 북가좌동...무허가 건물이 집단으로 있던 그 유명한 100번지일대..거긴 그 당시에 무허가 촌으로 한부럭이 형성되어 있었고 두개의 통으로 형성되었던 집단 무허가 촌이었다..주로 가난한 영세민들이고 모래내 뚝방에서 살다가 그곳이 개발되자 거기로 와서 한 무허가 부락을 형성해서 살았던 곳.....길은 한3m정도나 될가말가....좁고 냄새나고 그 골목엔 인구도 유난히 많아서 애들도 많았던 그 영세민 무허가 촌...그 북가좌동의 영세민들이 거의여기 모여 산 곳이었다...그래도 못살아도 맘은 좋고 인정이 살아있던 그런 인간의 냄새가 나던 순박한 사람들....난 당시에 영세민들을 관리하고 지원하던 기피부서였던 사회담당이었다...권한도없고 누가 용돈한푼 주지 않고 맨날 달라고 찾아오던 사람들...그래도 남을 돕는단것이 보람도 있었고 나만이 느끼던 긍지도 있었다....그래 남을 돕는단 것이 얼마나 보람이고 나도 못살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돕고 싶었고 내가 도와 줄수 있었던 것은 시에서 지원된 밀가루와 약간의 쌀과 보리...창고엔 항상 쌓여있었고...곡간에 쌓여있던 그 밀가루포대들.. 매달 차로 그 곡식들이 들어오면 너도 나도 달려와서 나르던 그런 영세민들....생존이 절박하던 시절이라 먹는단 문제보담도 더 절실한것이 없었던 시절......그런 사람집을 방문하고 보면 산단것이 이런생활도 있구나 하고 생각도 들고 이런사람들도 살려고 하는데 나는 정말로 선택된 사람...행복한 사람이란 생각도 들고...거기있을때 결혼도했었다....인심을 얻어서 였을가...잘 보이기위한것이었을가...내 결혼식장은 그 영세민들로 초만원을 이루어 다른 하객들이 의아해할 정도였다그정도로 많던 사람들...구름같이 몰려왔던 그 영세민들....초라한 옷차림이긴 해도식장까지 와서 축하해 주던 그 사람들의 훈훈한 인간미...일반사람들이 3000원이 상례였던 당시의 축의금...영세민들은 2000원..1000원이 주류를 이루었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신촌로타리 예식장을 원정온 그 많았던 영세민들.....난 결혼하고서 일을 할때 그리고 성의껏 인간적으로 도와주고 그사람들을 이해할때사람들은 그 진심을 안단 사실을 알고 더욱이나 열심히 한 기억이 난다..지금생각해도 너무도 고마운 사람들...인정이 그리도 넘치던 그런 사람들....다들어디서 살가혼자살던 이영래 할아버지..66세였던가..? 추석이 얼마남지 않았던 어느날..내책상으로 와서 품에서 가만히 꺼내준 선물.포장지는 신문지로 싼 보잘것 없어도 정성이보인 선물...궁금해서 그앞서 개봉해보니 양발 2족...고마웠다..그 정성이...그런 인정이 숨쉬던 그 영세민들...한 없이 순박하고 착하기만 한 사람들...가난해서 였을까...보여줄게 없어서 였을까....?몇푼주지 않아도 살 수있었던 그 건물...재개발이 이뤄지면 이것은 땅짚고 헤엄치는쉬운 것이어도 난 도대체 이런것에 가까이 하고 싶지가 않았다....바보 였던가......당시는 얼마나 허술하게 법이 집행되고 있었는데.....소위 감사실에 사는 직원들도 거기다 집을 사서 살기도 하고 그랬던 그무허가 집들... 통장이 날 자꾸 권유해도 난 거절하고 항상 내가 살집 번듯하게 지은 집...그런 완벽한 집만을 고집하고 있었으니 ......돈이들어 올리가 없지...집을 살려면 서대문에 있는 그 전샛돈을 빼다가 여기서 살아야 하는데...그비가 새고 시끄럽고 지저분한 그런 동네..재래식 변소를 사용해야 하고 ...그런 고통스런 생활을 견딜 자신이 없어서 영세민들..통장 그 고재춘 통장이 권유했어도 난 그저 듣곤 하기만 했었다...견디고 살다가 팔아도 되던 것을.....재테크엔 관심없고 옷이나 책등...또 음반등...그땐 좋아하는 곡을 청계천등으로 가서 녹음해다 듣던것이 유행...< 풍악 음악실 >~~~그 레코드 가게서 좋아한 음악을 얼마나 많이 녹음하고 듣고 하였던가..!!!..공 테프..녹음비 합처 당시 800원이다...생생하다 넘도 많이 녹음해서....그 풍악음악실 윤성섭인가...연대다니던 그 학생...음악에 대해서 논의도 하고감상도 듣곤 하던 거기 풍악음악실은 단골이기도 하고 음악감상실 이기도 했었다..그 녹음한 테프가 아마도 몇 box는 될거다..녹음해서 혼자만 듣던 그 음악들..좋아한 곡만 들으니 싫증도 안나고 해서 몇시간이나 듣던 그 노래들..카세트 ..나의 재산 목록 1호는 단연 그 카세트와 테프들이었지..2혼, 책이고....책사기와 음반모으기...테프등등....그많던 태프는 box로 몇이나 되던지........참 취미도 ...고상한척 하였으니 내가 돈 벌수있었던 그런 기회를 노쳤지...그래도 그런 취미가 있었던 것도 다행으로 안다...투기나 화투등을 하지않아서...그런 열정도 한때인가...이젠 그런 열정도 식어 버린 것이던가....책사기도 음반 사는것도...옷사는것도..도통이나 관심이 없다...나이탓인지 몰라.그래도 지금은 그 cd가 얼마나 많은가...팝이나 가요등등...누가 봄 질릴거다...그런 취미가 있어서 돈을 낭비해도 잔소리가 많지 않은 마누라 ...미웁다가도 고맙게 느끼기도 한다....하긴 술먹는것에 비함 아무것도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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