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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곳에서 하지 말라는 딸의 말을 무시할수없어 못했어요
다른 이들 한 모습이 괜찮아 보이셨다면 잘 했다 생각되
물론 사생활이라 공개하긴 좀 주저되는건 있지요.허나,일
이 곳 알게 된지 얼마 안되어 아직 공개는 못하고 있습
네 나인 속일수 없나봅니다각 기능들이 하나둘 고장나고
공감이 됩니다. 저역시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곳 저 곳
생존시는 그런걸 몰랐는데 막상 영영 이별하니 그리움 뿐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저 역
그런 이유로 공개일기로 작성하시는거잖아요.볼 수 있는
가시기전에 한번 만이라도 손이라도 잡고 애기라도 해야죠
12시 남성역 부근의 <벽제갈비>집.
창과 상을 불러 <삼계탕>을 먹었다.
-한 구멍만 팠기에 경제적인 성공스토리를 쓰는 <창>
-각박한 현실을 탈출하기위해 장교로 입대하여 승승장구했지만...
그렇게도 바라던 <스타>는 붙이지 못하고 예편한 <상>
-진짜 별을 달려고 그렇게도 노력했지만, 배경과 돈과 운이 따르지 않아 울면서
예편하고 말았어.
장교의 꿈은 결국은 별을 달고서 퇴역하는거 아닌가?
<장군>이란 칭호는 별을 달아야만 붙일수 있는 것이라 장교들의 꿈이지.
창은 정규 육사생으로 입대한것도 아니고 제 3사를 나와 그래도 대령으로 끝난것도
아무나 하는것 아니다.
군대시절의 우리 사단장였던 <이>사단장.
4시 하기식땐 사령부로 갔었다.
병참부는 바로 지척이라 갈수 밖에..
까만 안경을 끼고 지휘봉을 쥔 늠름했던 사단장의 멋진 모습.
모름지기 장군은 저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생각.
그 사단장을 자주 뵙곤 했다.
울진 삼척지방에 출현했던 북괴무장침투병.
피아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우리 사단은 그곳에 출동을 했고,
사살된 북괴병들의 시신이 즐비하게 논 두렁에 눠 있었던 그 모습.
헬기를 타고 우리의 사단장은 그곳을 방문했었지.
그런 멋진 장군을 의외의 장소에서 만날줄이야.
그 초라한 모습으로..
-아니 사단장님 어찌하여 이곳에 오셨지요?
묻곤 싶었지만,뻔히 아는 죄명이라 묻는게 도리어 아픔만 줄뿐..
별을 뗀 장군은 초라할 뿐였지.
-어 심장군?
우린 친구지만 그렇게 불러준다.
한 계급을 올려준다고 손해볼게 없으니까.
전엔, 손사레를 치던데 요즘은 빙그레 웃는 <상>
<장군>이란 칭호는 얼마나 가슴속에 품고서 바랬을까?
식사후, 커피솦으로 옮겨 1시간 이상 대화하다가 왔다.
-난, 언제나 화곡동 벗어나 자네들 처럼 강남족이 되어 보나?
어려울거 같아.
아니 나는 지금의 화곡동이 마치 고향처럼 친근하고 좋아서 못 벗어날거 같아.
-다 그래,그곳에 정을 붙이면 그게 고향이야.
그래도 맨 몸으로 올라온 우리들이 이 정로 산단 것도 성공아닌가?
자위를 해본다.
그래야 맘이 더 포근해지니...
301호는 7월 5일에서 6일로 연기했다고 전화가 왔다.
토요일이라 내가 바쁠거 같다.
그 날은 목동의 미용씨와 점심 약속을했으니 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