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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큰 실수를 했네요. 93년 결혼했고, 94년 임신
대구가 지형이 분지라 덥다고 하더라구요 겨울에는 춥고.
패는 까봐야 안다?그렇지요 나중에 개표를 해봐야알죠요즘
그래도 패는 까봐야 아는거 아닐까요 !!ㅎㅎㅎ실낱같은
어제, 오늘 바깥은 한여름 날씨예요. 특히 대구는 많이
행복님의 것도 사라졌다고 올렸죠? 그 이유가 무언지 궁
일기가 왜 자꾸 사라질까요?거기에 대한 운영자의 답도
여행 즐겁게 다녀오셨나요? 그 사이에 내 일기가 또 3
참으로 오랫만에 이 공간에서 만나니 반가워요하긴 행복님
그 시절을 겪었던 시대라서 그럴까요? 영화의 전성기여
까치산에서 운동중 알게된 고향 형님 <정>
3년전 허리 수술후유증 때문에 운동도 못하곤 가까운 공원이나 거닐고
헬스장에서 가벼운 운동으로 시간을 보내는 분.
-자네도 절대로 허리수술은 하지 말어
가벼운 마음으로 했더니 재발하곤 잘 낫지도 않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
2번이나 수술을 했으나 완쾌는 커녕 항상 힘들게 지팡이에 의지해 걷는다.
-난 정말 두 발로 자유롭게 걷는 사람이 그렇게 부러울수 없어
나처럼 당해보면 다 알지.
지난번 아들 결혼식때, 어떻게 소문듣곤 축의금을 보내줘 식사약속해
저녁을 했다.
-내가 젊은 시절엔 양복점이 얼마나 멋진 직업인지 몰라.
나주에서 양복점을 하니까 처갓집에서 딸을 억지로 결혼을 시킨거나 다름없어
당시 처갓집이 그래도 부자여서 결혼지참금이 쌀 100석이나 갖고 왔어
그게 더 크게 양복점을 확장시킨 자본이 된거야
시골에서 쌀 부자면 부자아냐?
내가 좋은게 아니라 내 직업이 퍽 유망스러워 장인이 작업(?)한 것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남자의 직업이 좋으면 여자들이 줄을 서는거
다 같아.
지방에서 서울로 진출해 당시의 양복점의 로망인 서린동에서 유명양복점으로
명성을 떨쳤다고 자랑을 만나면 하곤 한다.
그 시절에선 그 보다 더 멋진 직업이 없었으니...하다보면 끝이 없다.
누구든 자신의 화려한 과거를 애기할땐 좀 과장을 하는거라 이해한다.
총각시절부터 40여년을 그 직을 했으니 그 명성을 알거 같다.
북가좌동의 <한샘 양복점>의 고 사장.
늘씬하게 다려진 양복을 입고 기름발라 빗어넘긴 헤어스타일이며,
자신의 멋진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고 재춘 >사장.
지금도 멋진 모습으로 노후를 즐기겠지?
70년대의 남자의 직업에서 재단사는 단연 인기직업군의 하나.
멋 부리고 돈 잘 버는 직업.
그 많던 양복점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정>형님은 3살 연상인지라 늘 형님이란 호칭을 붙인다.
정많고 다정하고, 자상한 좋은 분이라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은
만나서 식사는 하는게 자연스럽다.
딸 셋만 낳아 모두 출가시키곤 딸들의 효도를 받으며 노후를 편히
지내지만, 그 허리때문에 얼굴엔 근심의 주름이 가시질 않는다.
신은 인간에게 모든것을 주진 않는다는 법칙.
-아픈건 다 자연스런 현상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