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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곳에서 하지 말라는 딸의 말을 무시할수없어 못했어요
다른 이들 한 모습이 괜찮아 보이셨다면 잘 했다 생각되
물론 사생활이라 공개하긴 좀 주저되는건 있지요.허나,일
이 곳 알게 된지 얼마 안되어 아직 공개는 못하고 있습
네 나인 속일수 없나봅니다각 기능들이 하나둘 고장나고
공감이 됩니다. 저역시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곳 저 곳
생존시는 그런걸 몰랐는데 막상 영영 이별하니 그리움 뿐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저 역
그런 이유로 공개일기로 작성하시는거잖아요.볼 수 있는
가시기전에 한번 만이라도 손이라도 잡고 애기라도 해야죠
<노안초교 10주년 기념>
고향 친구가 올해로 초등100주년 기념식을 대대적으로 행사를 한다는 내용을 보냈다.
그렇다면 1924년 개교했단 애긴데...
그 당시는, 일제가 우리의 강토를 유린하곤 맘대로 철권통치를 휘둘렸던 시기.
교장도, 선생도 모두가 일제의 선생였을까?
한글 아닌 일본어를 가르쳤을거란 상상 어렵지 않다.
헌데, 그 학교는 바로 아버지 동네 눈앞인데, 왜 아버진 이 학교를 다니시지 않았었나?
왜 생전에 그 물음을 던지지 못했을까?
무슨 이유로 초딩학교를 다니시지 않았을까?
조부님은, 그 당시엔 한문학에 능통해서 한글은 배울필요가 없다고 해서 자식들을
초등학교 보내시지 않았을까?
<노안 국민학교>가 엄연히 지척에 있었는데....
아버지가 막내라 그래도 학교를 보냈어야 했는데...
당신은, 한문을 배워 유식한 편이었지만, 아들들은 모두가 문맹자로 성장시켰다.
8남매가 되어도 그 나마 아버지만 한문을 배워 유식한편이었다.
자식들은 학교를 보내는 대신 일을 시켜 농토를 넓혀야 한다는 지론였나?
아무런 유산도 받지 못한 아버진 현실타개를 위해 일본행 하셨었나?
<오사카의 7년>간의 삶.
평생 지병인 해숫병만 얻어 오신 아버진 그 병을 완치도 못하시고 가셨다.
우리들 시절의 그 학교는 일제의 판잣집 건물로 비가 오면 곳곳에 물이새고 좁아서
학생수가 넘쳐 오전, 후반으로 등교를 해야만 했다.
학교뒷산에 있는 잔디가 우리들 교실였다.
봄부터 가을까지 죽....
아람드리 프라터너스가 어찌나 큰지 우리들 동네서도 그 나무 꼭대기가 보였었다.
추억이 깃든 초딩학교 시절.
-춤을 너무도 잘 추신 홍 승룡 선생님.
-자신이 써야 할 글씨를 나보고 쓰라하곤 책을 보시던 오수섭 선생님.
-쉬는 날 불러 고기를 잡자던 이 종연 선생님.
-내 진로를 위해 신경써 주시던 김 동선 선생님.
눈앞에 아롱거린다.
동창회를 하니까 담주엔 아마도 100주년 행사에 대한 토론이 있을거 같은데...
거부급 <창> 이 참석을 해야 하는데...
문제는, 돈의 기부액수가 아니라 어느 정도 성의를 갖고 대하느냐
진지한 토론이 필요할거 같다.
다른 기수들은 활발하게 움직이는데, 모른척하면 무슨 동문인가?
침묵을 지키고 있다면 바른소릴 해야 한다.
<기념비>엔 우리동창들 이름이 몇몇은 올라야 체면이 서는거니까..
움직이게 해주어야 움직인다면...................?
<돈>과 관련된 문제니까 쉬운일은 아니다.
잡음은 나게 되어있다.
그건 어디든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