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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이해 그렇네요 받침 하나 차이네요 그런데 그게 

오해와 이해는 받침 하나 차이죠. 다행입니다. 오해든 

제가 큰 실수를 했네요. 93년 결혼했고, 94년 임신 

대구가 지형이 분지라 덥다고 하더라구요 겨울에는 춥고. 

패는 까봐야 안다?그렇지요 나중에 개표를 해봐야알죠요즘 

그래도 패는 까봐야 아는거 아닐까요 !!ㅎㅎㅎ실낱같은 

어제, 오늘 바깥은 한여름 날씨예요. 특히 대구는 많이 

행복님의 것도 사라졌다고 올렸죠? 그 이유가 무언지 궁 

일기가 왜 자꾸 사라질까요?거기에 대한 운영자의 답도 

여행 즐겁게 다녀오셨나요? 그 사이에 내 일기가 또 3 

<노안초교 10주년 기념>
고향 친구가 올해로 초등100주년 기념식을 대대적으로 행사를 한다는 내용을 보냈다.
그렇다면 1924년 개교했단 애긴데...
그 당시는, 일제가 우리의 강토를 유린하곤 맘대로 철권통치를 휘둘렸던 시기.
교장도, 선생도 모두가 일제의 선생였을까?
한글 아닌 일본어를 가르쳤을거란 상상 어렵지 않다.
헌데, 그 학교는 바로 아버지 동네 눈앞인데, 왜 아버진 이 학교를 다니시지 않았었나?
왜 생전에 그 물음을 던지지 못했을까?
무슨 이유로 초딩학교를 다니시지 않았을까?
조부님은, 그 당시엔 한문학에 능통해서 한글은 배울필요가 없다고 해서 자식들을
초등학교 보내시지 않았을까?
<노안 국민학교>가 엄연히 지척에 있었는데....
아버지가 막내라 그래도 학교를 보냈어야 했는데...
당신은, 한문을 배워 유식한 편이었지만, 아들들은 모두가 문맹자로 성장시켰다.
8남매가 되어도 그 나마 아버지만 한문을 배워 유식한편이었다.
자식들은 학교를 보내는 대신 일을 시켜 농토를 넓혀야 한다는 지론였나?
아무런 유산도 받지 못한 아버진 현실타개를 위해 일본행 하셨었나?
<오사카의 7년>간의 삶.
평생 지병인 해숫병만 얻어 오신 아버진 그 병을 완치도 못하시고 가셨다.
우리들 시절의 그 학교는 일제의 판잣집 건물로 비가 오면 곳곳에 물이새고 좁아서
학생수가 넘쳐 오전, 후반으로 등교를 해야만 했다.
학교뒷산에 있는 잔디가 우리들 교실였다.
봄부터 가을까지 죽....
아람드리 프라터너스가 어찌나 큰지 우리들 동네서도 그 나무 꼭대기가 보였었다.
추억이 깃든 초딩학교 시절.
-춤을 너무도 잘 추신 홍 승룡 선생님.
-자신이 써야 할 글씨를 나보고 쓰라하곤 책을 보시던 오수섭 선생님.
-쉬는 날 불러 고기를 잡자던 이 종연 선생님.
-내 진로를 위해 신경써 주시던 김 동선 선생님.
눈앞에 아롱거린다.
동창회를 하니까 담주엔 아마도 100주년 행사에 대한 토론이 있을거 같은데...
거부급 <창> 이 참석을 해야 하는데...
문제는, 돈의 기부액수가 아니라 어느 정도 성의를 갖고 대하느냐
진지한 토론이 필요할거 같다.
다른 기수들은 활발하게 움직이는데, 모른척하면 무슨 동문인가?
침묵을 지키고 있다면 바른소릴 해야 한다.
<기념비>엔 우리동창들 이름이 몇몇은 올라야 체면이 서는거니까..
움직이게 해주어야 움직인다면...................?
<돈>과 관련된 문제니까 쉬운일은 아니다.
잡음은 나게 되어있다.
그건 어디든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