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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곳에서 하지 말라는 딸의 말을 무시할수없어 못했어요
다른 이들 한 모습이 괜찮아 보이셨다면 잘 했다 생각되
물론 사생활이라 공개하긴 좀 주저되는건 있지요.허나,일
이 곳 알게 된지 얼마 안되어 아직 공개는 못하고 있습
네 나인 속일수 없나봅니다각 기능들이 하나둘 고장나고
공감이 됩니다. 저역시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곳 저 곳
생존시는 그런걸 몰랐는데 막상 영영 이별하니 그리움 뿐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저 역
그런 이유로 공개일기로 작성하시는거잖아요.볼 수 있는
가시기전에 한번 만이라도 손이라도 잡고 애기라도 해야죠
2003년 봄, 구순을 앞두고 89세의 연세로 끝내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저 세상 떠난 어머니.
딱 20년 전의 아픔.
-연세가 많으신 분은 넘어지면 엉덩이 고관절인 뼈가 약해 돌아가시게 된다.
그해 겨울 넘어지신 어머니는 나주 한국병원에 3개월 입원하신후 영영 귀가하지 못하시곤
하늘나라로 가셨다.
3개월동안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병석에서 돌봐준 여동생 순이.
장남도 형수도, 나도 와이프도 곁에서 지켜주지 못했지만 동생은 늘 곁에서 병수발을 들었었지.
-객지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어머님 곁에서 도란거리는 말로 지켜주지 못했던 사람들.
-네가 고생해라 어쩔수있냐?
다들 서울에서 수원에서 살고들 있으니...
다들 그럴듯한 핑게로 모두들 동생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만 했었다.
-긴 병에 효자없다는 말.
순이만 마지막 순간까지 끝끝내 곁을 지켜준 효녀일뿐 모두들 불효자들이다.
-어머님이 숨을 거두신 날도 여전히 직장에서 늘 불안한 마음으로 지내야 했다.
목동의 <명동 칼국수집>에서 막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 시간에
-오빠, 방금 엄니가 가시고 말았어 아무말씀도 없이 그냥 흑흑흑..
흐느끼는 순의 음성.
-그래 알았어 곧 내려갈께.
소형 프라이드를 몰고 달려갔지만,. 나주엔 저녁6시경이나 되었을까?
밤 공기는 쌀쌀했다.
젤 먼저 어머님을 뵙고 싶어 차디찬 영안실의 작은 곽속에 눠계신 어머니의 모습.
핏기잃은 파리한 안색이지만, 잠을 자고 있는듯한 편안한 모습.
그냥 덤덤히 보고만 말았다.
나완 상관없는 사람을 바라보는 그런 기분?
아무런 감정도 어떤 기분도 못 느낀건 왜 그랬나?
너무도 엉겹결에 마주친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부족?
아님 정신이 없어 그랬나?
현직에 몸담고 있어 직장에서도 동창들도 많이 와주어 정신없이 다 마무리했고..
발인날은 당신이 살았던 마을과 집을 돌아보게 된 순서다.
3 개월전에 넘어져 병원에 입원하곤 마지막으로 다니러 오신 이 집.
당신의 추억이 곳곳에 묻어있을 이 집을 바라보면서 가실때의 그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여기서 낳고 자라선 여기서 지금까지 살았던 마을인데...
집을 돌아보곤 나올때는 눈물이 앞을 가려서 혼자서 펑펑 울었다.
동네 앞의 마을회관앞서 노재를 지내기 전에 잠간 동안의 순간.
갑자기 어머님 모습이 떠올라 왜 그리고 눈물이 나오는지..?
집 구석구석 곳곳에 어머니 모습이 보여서 그랬던거 같다.
돌아가셨을때 부터 발인날 까지도 아무런 감정도 모르곤 지냈는데...
왜 당신이 살았던 그 집을 바라보니 그랬을까?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생생한 그 모습, 그리운 이름 어머니.
하굣길에 늦게 온다고 호롱불 들고 멀리 마중나오셨던 모정.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나주까지 마중나오셨던 어머니.
어머니가 아니고선 있을수 없는 일들.
어찌 그 모습을 쉽게 망각하겠는가?
어머니란 이름,
이름만으로도 그리움과 눈물이고 고향의 아늑한 정겨움이다.
불효자로 산것에 대한 회한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