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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그날은 꿈에 젖었는데...

1966년 3월 11 일.매년 이 날은 잊혀지지 않은 날이다.꿈에 부풀어 청운을 품고 찾아간  크리스찬 타운.소사 범박리  시디 11동 .

고향떠나 개나리 봇짐지고 저 세상 뜬 이종사촌 동생 경제와 동행했던 그 날.경제아빠인 이모부는 저 멀리 경상도로 돈 벌러 가시기 위해 호남선 타서 대전서 이별을 했었지.부자간의 이별도 아픈 이별인데 장래를 위해 홀홀단신으로 시티로 보내는 이모부의 마음인들얼마나 아팠으랴.시골서 헤어진 아버지의 심정도 다름이 아니리라.

이모 할머니의 과장된 소개에 넋을 잃고 내가 갈곳은 거기다하곤 따라나섰던 그곳.<박 태선 장로>가 건설한 소사 제 1 신앙촌.겉으론 보긴 천국였다.<임자없는 가게>가 있었던 거긴 천국 아니고 뭔가?얼마나 신앙이 깊었으면 스스로 돈 내고 물건을 사갔을까?<신앙>만이 생의 전부로 생각하고 찾아온 이 사람들.그 믿음없으며는 어디 가능하겠는가?

생활해본 몇개월,결코 거긴 천국이 아니었고 여기도 돈 아니면 설 자리가 없었다.자신의 재산전부를 팔아다 바쳐야만 거주할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고 그것도 자신의 소유가 아닌 임차였던 건물.막대한 자신의 돈을 투자하고도 내 소유아닌 신앙촌 재산인 이 부조리.돈의 액수따라 집의 규모도 각각 다른 A,B.C.D.....등급이 달랐다.돈이 없으면 여기에 들어올수 있는 자격조차 없지,주거공간이 없는데 어디서 살수 있는가?<신앙>의 명목으로 각지방의  신앙인의 재산을 끌어모아 형성된 신앙촌.<신앙심>의 정도로 구분 아닌 사유재산 규모로 주택의 크기를 형성한 부조리한 구조.이런 저런 일을 하면서 막상 나갈곳 없는 호구지책을 해결하기 위해 <안내원>이란 직분으로2 년을 버텼다.어쩔건가?군대가기전까진 호구지책을 해결하기 위해 머물곳이 여긴데........

이상과 현실이 다른 이곳.외부의 선전과 다른 이상한 곳이 신앙촌.느끼는건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애당초 이런 곳이였다면 오지나 말걸.

19살의 꽃다운 청춘을 2 년을 머문 그곳.많은것을 느끼고 배우고 경험했던 그곳.잊혀질 이유가 있는가?딱 2 년간 머문 제 1 신앙촌.그 청운의 꿈은 꿈으로 머물고 말았지만, 많은것을 배운 곳이라잊혀지지 않는 곳이다.3 월 11일 새벽 4시경 영등포 역의 싸한 새벽바람.그 바람조차도 꿈에 젖어 싱그럽게 느껴지던 아련한 그 시절.-꿈은 사라졌어도 그땐 아름다워서 잊혀지지 않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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