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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외로울때 친구가 옆에 있으면...

고향의  ㅈ 씨.명동, 소공동등에서 40 여년간 양복점을 운영하여 , 그 당시의 부러움의  양복 재단사란 직업.뭍 여성들의 결혼대상자로 ㅇ 순위였지 않았을까?


-조카 ㅂ 도 그런 직업이 좋아 결혼했었고, ㅈ 씨도 그 명성에 걸맞게 부근의 부잣집 공주와 한평생 인연을 맺어 이어오고 있다.<재단사>는 돈 잘버는 남자의 직업.그런 인식이 박혀있어 결혼조건이 좋은 편이었지.1970년대는 기성복 양복이란 대부분이  입을수 없는 조잡한 것이 었고 매월 월급타면 월부로 양복을 맞춰 입는 재미가 쏠쏠하여 옷 좋아 낭비도많았다.순천에서 첫 시작했을때...처음 탄 월급으로 부모님 내의 한벌과 양복을 맞췄다.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촌티 나는 양복였던가?회색바탕에 십자무늬가 쳐 있는 양복.

북가좌동에선 <한샘 양복점>의 ㄱ 사장.미남에 번듯한 양복을 입고서 재단을 하는 걸 보면 멋있어보여 자주 놀러가곤했지.옷도 자주 맞추고, 그래도 친한 공무원이라선지 가격 좀 싸게 해줬었다.변두리 양복점이 이럴진대, ㅈ 씨는 유명패선이 판 치는 명동 소공동에서 40여년간을 운영했으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 인지는 상상이 간다.


부러움의 대상였던 재단사란 직업.대기업에서 맞춤 못지않은 기성복출시되고 주를 이루자 서서히 사양길에 접어들더니 지금은 그 흔한 00 라사란 간판 찾기가 어렵다.그래도 ㅈ 씨는 성실히 돈 벌어 저축해둔덕에 화곡동에 빌라 두채, 성수동에35 평 아파트가 14 억정도에 거래된단다.겨우 1 억3천에 산 아파트의 가격상승.<아파트 >처럼 부를 가져다 준 재태크가 어디 있었던가?그런 부를 저축할수 있었던 것도 ㅈ 씨의 성실성도 있지만.....한때의 수입을 착실히 저축해둔 덕 였을것이다.

호사다마라고 했지.어떤 어려움 없이 편안히 살줄 알았는데...2 번의 허리수술로 거동조차 어렵단다.


수술은 신중을 기해야 하고, 명의를 찾아 했어야 했는데.... ㅅ , ㅇ 병원에서 두번의 수술이 모두 잘못된 바람에 통증으로 거동조차 어려운 실정이지만............오늘 그래도 견디면서 까치산에 오셔서 모처럼 <청진 해장국>을 함께 했다.-거동이 부자유스러우니 하룻내 티비 앞에서 시간 죽이니 얼마나 답답한지 몰라 이렇게 그냥 살다가 죽을거 같아.-형님 뭐 그런 말씀을 하세요?명의 찾아 다시 제대로 수술하시고 더 사셔야죠.뭐 얼굴은 육십초반으로 보이구먼...-난 자네가 젤로 부럽네.맘대로 걷지 어디 아픈데 없이 어디든 다니지.걷지 못한단 것이 얼마나 답답한지 알아?-이해는 해요.
연상이고, 거동이 불편해서 함께 운동은 못하지만....이런때의 말 동무가 되어줄 친구.그리운 법.-사람은 외로울때의 다정한 친구.그 친구가 얼마나 그립던가.가끔은 어울리면서 ㅈ 형의 친구가 되자.입장을 바꿔보면 이해가 된다.<역지사지>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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