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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곳에서 하지 말라는 딸의 말을 무시할수없어 못했어요
다른 이들 한 모습이 괜찮아 보이셨다면 잘 했다 생각되
물론 사생활이라 공개하긴 좀 주저되는건 있지요.허나,일
이 곳 알게 된지 얼마 안되어 아직 공개는 못하고 있습
네 나인 속일수 없나봅니다각 기능들이 하나둘 고장나고
공감이 됩니다. 저역시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곳 저 곳
생존시는 그런걸 몰랐는데 막상 영영 이별하니 그리움 뿐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저 역
그런 이유로 공개일기로 작성하시는거잖아요.볼 수 있는
가시기전에 한번 만이라도 손이라도 잡고 애기라도 해야죠
1979년도,결혼시엔 손수 만든 이불을 선물로 주셨던 분이라 잊혀지지 않는다.결혼당시, 그 누구도 결혼선물을 받아본적 없었지만...처 고모는 그래도 정성이 깃든 이불을 해 주셔서 신혼때 항상 이용했던 초록빛나는 이불을 기억하고 있다.
<코로나 19>의 위력은 장레식장도 갈수 없다.큰 처남이 대표로 조문을 가는가 보다.부의금만 보냈다.
개인의 인생사에서 가장 슬픈 날이고, 마지막 가서라도 배웅을 해 드려야 하는게인간의 도린데...<인간조건>을 모두 편리하게 버리고도 당당하게 들 산다.나도 마찬가지다.-이번 코로나 사태로 절대로 가지마 그냥 부의금만 보내라는 와이프.당자가 별세했으니 체면치레(?)는 할 필요가 없단다.<최 돈심>씨와 그렇게 잘 어울려 다님서 생활을 했던 ㅎ 이란 자.정승 개가 죽으면 갔을건데 정승이 죽자 철저히 외면해 버린 그 빤빤스런자말끝마다 의리 운운하던 그 자를 쳐다보게 된다.
작은 처남도 가질 않는단다.부모의 제사도 불참했던 불효.작년에 이혼으로 얼굴을 볼수 없어 못나온다고 했는데...언제는 뻔뻔하지 않았나?이유가 어디 있든 낼 모래 70이 되어가는 몸인데 아직도 그런처지가 참으로안타깝기만 하다.100년을 살것도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