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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3 일째

대 한국인 안 중근

1910년 10월 26일9시 30분경

만주 하일번 역

일제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그 당시

침략의 원흉 이또오  히로부비가 하얼빈역에 내려 러시아 의장대를 사열을 하려는 찰라

세방의 촐소리와 함께 쓰러진 이토 히로부미.

-대한 독립만세..

 

32세의 우리의 안 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이고 오늘은 순국 99주년.

차디찬 여순감옥에서 세상을 떠난것

그리고 ,

우린 그의 유해라도 찾을까 공동묘지도 파 보았지만 허사였단다.

간악한 일제는 안 의사의 유해를 돌려줘선  그곳이  성지가 되고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될거란

우려때문에 유기했단다.

죽은 뒤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어딘가에 묻혀있을 안 의사.

-일본의 협조만 있어도 찾을순 있을텐데..

해방된 조국에 묻히지 못한 원혼이 구천을 떠돌걸 생각하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조국광복을 위해 몸을 불사른 그 분에게 우린 이렇게도 무관심했던가?

순국한지 90여연동안 조국은 어떤 노력을 했단 말인가?

과연 일본과 중국의 협조가 있었어도 아직껏 유해조차 찾지 못한단 말인가?

너무도 무관심했다.

우리 모두가......

지금이라도 일본의 협조만 있다면 그때의 자료를 분명이 보관하고 있을거다

그들의 문서엔 분명 안 의사의 묘지는 어디란건 알수 있을텐데..

과연 이런정도의 협조는 해 봤는지..??

 

 

거사후, 안의사는,

일본 총영사관으로 넘겨졌다. 일본 총영사관은 현재 화위안가(花園街) 대로변에 있는 화위안 소학교 자리다. 예스러워 보이는 건물이지만 사실 2002년 새로 지은 건물이다. 안 의사는 거사 직후 이곳 지하감옥에 수감됐다. 10월30일 안 의사는 이곳 지하감옥 고문실에서 일본 검찰관에게 1차 취조를 받는다.



초연한 자세의 안 의사는 이 자리에서 지금도 유명한 이토의 15개조 죄상을 당당히 밝힌다. 15개조 죄상은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한국 황제를 폐위한 죄 ▲무고한 한국인을 학살한 죄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 ▲한국 군대를 해산한 죄 ▲교육을 방해한 죄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가 열거된다.


 

안의사가 아무리 동양평화를 외치고 공동번영을 외쳐도 그들의 뇌리엔 들어올리 없었겠지.

온통 동양의 침략과 정복 뿐...

 

 


안 의사는 법정에서 이렇게 당당히 주장했다.

“내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죽인 것은 한국 독립전쟁의 한 부분이다. 나는 개인 자격으로 이 일을 한 것이 아니라, 한국 의군 참모중장 자격으로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서 한 것이니 만국 공법(국제법)에 의해 처리하도록 하라.”

안 의사의 재판을 지켜본 영국 ‘그래픽’지의 기자 찰스 머리모는 “세계적인 재판의 승리자는 안중근이었다. 그는 영웅의 월계관을 쓰고 자랑스럽게 법정을 떠났으며, 이토 히로부미는 그의 입을 통해 한낱 파렴치한 독재자로 전락했다”고 평했다.

 

 

안 의사는 사형집행 전인 3월10일 동생 정근, 공근, 빌헬름 신부를 면회한 자리에서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글을 남긴다.

“내가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3년 동안 해외에서 풍찬노숙을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고 죽노니 우리들 2000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을 힘쓰고 실업(實業)을 진흥하며 나의 뜻을 이어 자유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유한이 없겠노라.”

1910년 3월26일 안 의사는 어머니가 보낸 한복으로 갈아입고 이곳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뤼순감옥은 당시 사형집행수의 유해를 발굴해 전시하고 있다. 50∼60cm의 나무통에 구겨 넣어진 시체는 소름을 돋게 한다. 안 의사 유해도 이런 행태로 매장됐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 당국은 유해를 돌려 달라는 유족의 간절한 소망에도 비밀리에 안 의사의 시신을 유기했다.

안 의사 유해가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감옥 뒤편 야산 일대에서 발굴작업을 벌였으나 실패로 끝났다. 박귀언 여순순국선열재단 상임이사는 “유해를 어디에 유기했는지 당시 일본 관동도독부 당국의 처리 보고서를 확보하기 전에는 유해를 찾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안 의사의 최후 유언은 오늘에도 큰 울림으로 남는다.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 안중근 의거 100주년에서 발췌>

 

거사 100주년, 그리고 순국 한지 99주년.

99년간을 낯선 외국땅을 떠돌고 있을 혼.

독립되면 해방된 조국에 묻어달란 그의 유언.

조국에 쉬고 싶다는 그 분의 소원조차 우린 들어줄순 없는가?

왜 우리는 조국을 위해 헌신한 독립투사에게 그렇게도 무관심하기만 할까.

<안중근 의사 기념관 건립>을 남산에 세운다니 늦은감은 있어도 그 나마 위안이 된다.

그는,

대한의 독립을 위해 청춘을 던진 진정한 용기있는 대한의 아들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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