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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4 일째

고 김 수환 추기경님을 애도함

지난 16일엔 한국종교계의 거목뿐 아니라 우리국민의 가슴에 늘 든든한 버팀목으로 계시던 김 수환 추기경이 87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늘 억압받고 핍박받은자의 편에서 앞장서 불의와 싸우면서 용기를 북돋아 주시던 분.

서슬퍼런 70년대의 박통시절과 나는 새도 떨어뜨린 다던 전통시절에도 군부독재와 의연하게 맞써

옳은 말을 거침없이 하셨던 분.

 

<명동성당>을 독재와 싸우는 억압받은자들의 치외법권지대로 기꺼이  피난처를 만들어 주셨고...

그 분의 서슬퍼런 언성엔 군부독재도 감히 성당에 진입은 상상하지 못했었다.

아마도 군부독재에겐 눈앞에 가시같은 존재였을거다.

 

김 대중 전 대통령이 박해를 받아 감옥살이 건사에도 그 분의 입김이 컸고..

김 영삼 전 대톨령의 민주화 투쟁의 단식투쟁도 그 분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지.

 

고 김 수환 추기경은 한국현대사의 민주화 투쟁에선 빠질수 없는 분이셨다.

_종교가 사회와 멀리떨어져 있어선 안되고 사회에 적극 참여하여 사회속으로 들어가

현실참여를 해야 한다고 부르짖던 분.

종교란,

현실을 초월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속>에서 불의와 싸워야 한단 지론였다.

 

고 김수환 추기경님을 첨 뵌건 전두환 정권이 출범한지 얼마되지 않았던 80년대 초였던가?

여름였던거 같다.

그 분이 등촌성당을 오신단 정보.

구청뿐만 아니라, 경찰서등 관공서가 모두 비상사태였다.

추기경이란 직위가 어떠한가?

국가원수에 버금가는 예우가 아니던가...

여야 국회의원은 물론, 구청장과 국장들, 동장 등등..

연도에 서서 그 분을 영접하기 위해 도열해  있었다.

나는,

그때 주민들 통제를 위해 그 현장에 있었고.....

만면에 인자한 웃음을 띠면서 악수를 차레 차레 하셨던 추기경.

헌데,

그때 국회의원이던 두 분에게선 웃던 웃음도 사라지고 그저 무덤덤하게 의례적인 손만 내밀곤 어떤 대화

조차 없이 걸어가신 거였다.

<어떻게 국회의원에게 대하시는 태도가 저렇게 쌀쌀하시가만 할까 그래도 환영나온 귀한분들인데.??>

일반신도와 주민에겐 그렇게 웃음으로 맞이하시던 분이........

첨엔 이해가 안되었었지.

헌데,

그분의 눈엔 그렇잖아도 전통이 구테타로 정권을 잡은 사람인데 그 시대에 국회의원을 한 사람인들

사람답게 볼리가 만무하겠지.

권력에 아부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쯤으로 본것일까..

너무도 의연하게 대하시는것을 보곤 참으로 대단한 분이시란 생각을 했다.

역시  김 수환 추기경다운 면모를 보았다.

 

호가< 옹기>란다.

<옹기그릇>을 한 집안내력때문인데...

얼마나 투박하고 한국적인 호 인가?

옹기그릇처럼 그렇게 정이 가는 그릇같은 그의 호.

 

종교를 초월해서 우리의 정신적인 지주였고.....

늘 불의앞엔 참지 못하시던 선각자셨던 분.

가난한자, 억압받은자, 핍박받은자의 곁에는 그 분이 계셔서 든든하기만 했는데....

이젠 허전하기만 한건 나 만이 아닐것이다.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사랑>을 실천하고 가신 분.

두 눈을 주시고 가셨으니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신거 아닌가?

 

그래도,

이젠 그 분의 공로로 이 정도의 수준에 이른 우리나라.

아무리 서슬퍼런 정권앞에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으셨던 분.

한 시대에 큰 획을 남기시고 가셨지만............

어찌 우리가 잊으랴.

<사랑>으로 보듬어 주고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그 분의 한 평생을...

유리관에 주무시는 님의 표정은 어쩌면 그렇게도 평온하게 보일까..

님이시여,

이젠 모든 것을 잊고 천국에서 평안을 누리소서.

다시금 명복을 빕니다.

우린 영원히 당신을 잊지못하고 새길 겁니다.

<정의를 위해 싸우신 진정한 양심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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