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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53 일째

천년의 고도 나주

<천년의 고도>란다.

나주를 말할때........

나주와 전주를 함쳐 전라도란 말이 생길 정도였으니 그 연원을 따진건 무의미 하겠지.

역사적으로 따지면 광주보담은 훨씬 앞선 도시지만......

왜 이렇게도 그 모양 그대로 일까?

세현이와 거리를 걸어봤다.

바로 나주의 가장번화가라고 하는 곳을...

이 길은 내가 중학교 다닐때 자전거 타고 다니던 그 길,.

바로 그길이 그대로다.,

다만,

포장만 되어 있을 뿐 전혀 변화된 모습을 볼수 없다.

 

도회의 번화가에 살다가 어느날 찾아온 자신의 생가.

퇴락한 생가를 찾았을때 엉성하게 잡풀만 뒤엉켜 있는 보습을 바라보는 느낌.

바로 그런 느낌같다고나 할까?

무언가 허전하고 허무한 그런 느낌.

 

-나주의 번성기는 언제일까?

1960년댄거 같다.

<나주 호남비료 공장>이 웅장하게 가동되고 인근의 수학여행코스를 이곳으로 오는 학생들이

있을때....

아침이면 출근하는 셀러리맨들의 자전거 긴 행렬.

바글댔는데 이젠 그런 풍경은 없다.

<나주><중앙>극장의 치열한 경쟁으로 다투어 손님을 끌던 시절.

한국영화의 부흥기가 바로 나주시의 부흥기엿을까?

그렇게만 보인다.

왜 이렇게 작아 보이는걸까?

그 모습은 그대로인데............

 

<나주인>이 되기 위해 부던히도 애썼던 내 청춘시절.

다들 떠나도 나주에서 살고 싶었었다.

당당히...

헌데 내가 안주할 그런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임시직>으로 시작해서 정직원으로 될거란 아버지의 말씀도 고무적이었는데...

그 나마도 내겐 주어진 자리가 아니었다.

나 보담 더욱 든든한 빽을 동원해서 내 자릴 빼앗는 바람에 세상의 무서움을 다시금

느끼곤 냉랭한 인삼에 다시 보는 눈을 갖인건지 모른다

어쩔수 없이 나주를 떠나야 했다.

<웅지?>를 품고....

순천, 그리고 서울로의 진출.

<고기는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

고향에서의 냉랭함이 내겐 보다 소중한 시간을 갖게 했다.

그런 비애를 맞보지 않았음 안주하고 말앗을거다

나주시청의 말단 공직으로 끝냈던가, 운이 좋았으면 고향의 면장이라도 했을거고...

그랫으면 효도는 했을지 모르지.

그런 모습을 아버진 너무도 바랬으니까..

당신의 자존심을 최소한 지켜준건 될테니까......

 

모든건 내의지완 상관없이 흘러갔다.

어딘가로......

서울로해서 떠돌고,그리고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

다시금 고향엘 왔다.

 

<천년의 고도>라면 찬란한 문화재라도 있으련만 별로다.

남문의 웅장(?)어느시대의 건축물인지 특색도 그렇다.

억지로 만들어 세워둔거 같은 그 문,

웅장함은 고사하고 초라해 뵌다

내 눈에만 그럴까?

생기차고 웅장함을 느낄수 있는건 무얼까?

조금 슬픈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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